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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를 완주하자) 비봉공원 일문구의사 사적비 국가보훈처 지정 완주군 공식 현충 시설

와이투케이 2020. 7. 28. 21:52

 

완주 비봉공원 일문구의사 사적비

국가보훈처 지정 완주군 공식 현충 시설

 

 

일문구의사(一門九義士)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한 가문에 9명의 의사 즉 독립 유공자가 있다는 말인데요.

그 가문은 바로 비봉 내월리의 고흥 유씨 가문이며 이 가문의 9명의 의사가 독립 유공자이고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일문구의사 사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한 가문의 사적비로 보아서는 아니 되고요.

한 마을 한 가문에서 9명의 독립 유공자가 나와 이를 추모하는 현충 시설로 봐야 합니다.

그 당시에는 대한민국에서 애국자로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멸망한다는 시절이니

대단하고 자랑할만한 가문입니다.

 

 

독립 유공자 일문구의사 가문

 

일문구의사 사적비는 국가보훈처가 공식 지정한 우리 고장 완주의 현충 시설입니다.

완주군 고산과 비봉은 예로부터 고흥 유씨 집성촌으로 완주의 산골 마을인데요.

비봉면 소재지에서 천호 성지로 가는 길에서 내월리로 들어가는 중리삼거리의 비봉 공원에

고흥 유씨 한 가문의 독립 유공자 9명을 추모하는 사적비를 세웠습니다.

 

 

이곳 고흥 유씨 집성촌에서 배출된 독립 유공자 일문구의사는 유치복(애국장) 유태석(애족장) 유영석(애족장) 유명석(애족장) 유준석(애족장) 유현석(애족장) 유연청(애족장) 유연풍(애족장) 유연봉(애족장) 9명입니다.

이들은 한 가문에서 의병 활동에 나서는 등 항일운동에 헌신한 것은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드믄 기록이며 이들 모두 애국장과 애족장을 받아 우리나라 항일운동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완주 현충 시설 일문구의사 사적비

 

 

일제 시대 모진 핍박 속에서도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하여 힘썼던

완주 비봉 고흥 유씨 가문 9명 의사의 공훈을 선양하고 추모하기 위해

19825월 일문구의사 사적비가 건립되었고요.

이후 2003년 국가보훈처로부터 공식 현충 시설로 지정되었습니다.

매년 삼일절과 현충일 그리고 순국선열의 날에는 이 사적비에서 완주군수와 우리 지역

국회의원, 군의원, 관계자 등이 모여 참배를 하는 추모행사가 열리는 곳입니다.

 

 

일문구의사 대부분은 체포되어 고문도 당하고 총살을 당하였으며 일부는 10년형 이상의 중형을 받고 옥살이를 하였다 합니다.

민족의 자존을 지켜내야 한다는 유씨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나라 사랑 정신과 민족혼이

뿌리내리지 않았다면 과연 일문구의사의 탄생이 가능했을까요?

필자도 고흥 유씨 일문구의사의 후손으로서 고개를 숙이고 추모를 하였습니다.

 

 

완주군 비봉 공원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는 일문구의사 사적비가 있으며

왼쪽엔 유습 장군의 사적비와 장승 그리고 휴게시설로 되어있는 규모에서는 작은 공원이나

의미에서는 현충 시설과 공원이 같이 있는 아주 큰 공원입니다.

 

 

비봉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일문구의사에 대해 자세하게 알기 위해 사적비 안내판을 꼼꼼하게 읽어봅니다.

예전 종중에서 몇 번 들어본 적은 있었으나 선친들의 상세한 독립운동에 대해선

그간 잘 몰랐거든요.

일문구의사에 대해 깨알 같은 글씨로 자세하게 소개되어있는데요.

자세하게 읽어보면 누구나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들고 머리가 숙어집니다.

 

 

고흥 유씨 독립 유공자 9분의 명단도 들여다봅니다.

훈격별로 상세한 유공자 명단과 생년월일, 후손 이름까지 쓰여있었고요.

9명 모두 독립 유공자로 지정을 받는 과정이 무척 어려웠다고 하는데요

9명 중 일부는 후손을 찾을 수 없어 후손으로 등록 안 된 유공자가 있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정중앙엔 일문구의사 사적비라고 써진 비가 세워져 있는데요.

웅장하면서도 근엄하게 보여 지였습니다.

 

 

사적비 왼쪽엔 제헌 국회의원 소정 유준상 추모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 유준상이 2명이 있는데요.

2분 모두 고흥 유씨 가문의 같은 학 열이고요.

이곳의 추모비는 완주 비봉이 고향으로 비봉면장 출신으로 제헌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소정 유준상 추모비입니다.

 

 

이 외에도 유씨 가문의 한씨 정려각 과 이씨 효열각 등 열녀각 2기가 세워져 있으며

불효자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어머니라는 사모 시비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완주 비봉 공원

 

 

비봉 공원의 천호 성지 가는 도로변 중리삼거리에 조성한 작은 공원인데요.

일필휘지의 잘 휘 들러 쓴 비봉 공원이라는 표지석을 보면 무척 아름답고

어느 유명하고 큰 공원 못지않습니다.

황색을 띠는 자연석으로 된 공원 표지석의 비봉 공원의 글씨는 우리나라 유일의

단일 서예전시관을 가지고 있는 서예가 강암 송성용 선생이 써준 글씨라고 합니다.

 

 

그 맞은편 내월리 입구엔 건물이 아름답고 규모가 큰 그림 같은 달이실 체험농장이

보이는데요.

전북 완주로 귀농해서 명이나물 포포나무 토종 다래를 재배하며

유산양 포니 미니어쳐 보더콜리를 키우며 중국어 일본어도 강의하며 비봉 테니스코트를

운영하며 각종 체험을 진행하는 곳이랍니다.

 

 

산골 마을의 작은 공원치곤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있는 공원으로 주민들을 위한 운동시설과

쉼터인 정자 등 여느 공원과 마찬가지로 있을 것은 다 갖추고 있는 공원입니다.

 

 

온갖 잡귀와 전염병부터 주민들을 보호해 주고, 개인의 소원을 기원하는 민간 신앙의

대상이며, 마을 수호신인 목장승이 3개가 있는데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과 모든 주민의 장수를 비는 백세장수건강지신 이란

장승도 있습니다.

 

 

석장승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은 장승인데요.

어서 오세요. 달이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석장승의 글씨는 이 공원에 들르는

모든 분을 반기어 주는 소박하고도 정겨운 석장승이었습니다.

2기의 석장승은 키가 크고 글자가 뚜렷하여 산골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한눈에 확 들어옵니다.

달이실은 내월리의 옛말이며 석장승 옆엔 작은 하마비도 있는데요.

누구든 이곳에서 내려 편히 쉬어가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완주 비봉 공원의 터는 1728(영조 4) 이인좌의 난 때 비봉 출신 유심이

이 지역의 의병 150명을 모집해 집결한 곳인데요.

역사적인 장소에 역사적인 공원을 만든 것입니다.

 

 

유습 장군 추모비

 

 

도로 건너 일문구의사 사적비 외에도 역시 고흥 유씨 가문인 유습 장군 추모비가 있으며

목장승과 돌로 된 석장승 등을 갖추고 있는 비봉 공원입니다.

세종1(1419) 대마도 정벌에 좌군도총제로 참여한 양정공 류습 장군의 사적비의 빗돌은

완주에서 가장 큰 돌로 알려지어 있습니다.

 

 

비봉 공원은 반란군 진압과 대마도 정벌 역사가 깃든 곳으로 후손들에게 유습 장군과

일문구의사 등 역사성을 알려주기 위하여 1년 전인 2019618일 비봉 공원이라는

표지석 제막식을 완주군수와 군의원 마을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졌는데요,

예전엔 장승이 있어 장승 공원으로 불리었습니다.

 

 

비봉 내월리는 천호산 아래 한 골짜기에 천주교(천호성지), 기독교(예배당), 불교(요덕암 외), 유교(봉양서원) 4대 종교가 공존하는 곳인데요.

그 정도로 비봉면에는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어 각종 종교가 들어서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공원 입구엔 달팽이 모양의 순례길 안내판이 있는데요.

4대 종교가 있어 완주에서는 유명한 잘 알려진 순례길입니다.

 

 

요즘 일본의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왜곡문제와 독도 영토분쟁으로

나라 사랑이 더욱 절실한 때입니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해 목숨마저 내놓은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을 생각하며

일문구의사 사적비와 비봉 공원을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