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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여산 향교 고도 익산 여산을 증명하는 조선 시대 국립교육기관

와이투케이 2022. 6. 21. 11:05

 

익산 여산 향교

고도 익산 여산을 증명하는 조선 시대 국립교육기관

 

 

 

 

익산 여산(礪山)은 근대 이전부터 우리나라 국도 1호선을 따라 호남의 관문에 있는 예사롭지 않은 조선 시대 고도로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는데요. 조선 인조 때에는 전라도 5군영 중 후영(後營)이 설치되었으며, 군산 임피를 포함한 전라도 동북 지방의 10개 읍을 담당했던 곳이었습니다. 나아가 699(숙종25)에는 단종 왕후 송 씨의 본관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되었던 여산입니다.

 

 

 

 

그래서 조선 전기 국립교육기관이었던 여산 향교와 지방관청이었던 여산 동헌이 있고요.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와 백 지사 터 등 천주교 순교성지가 있는 익산이 자랑하는 고도여행지이며, 천주교 성지 순례 여행지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백제 왕도인 익산에는 금마와 함라, 용안 등 오래된 조선 시대 고도들이 있는데요, 이 고도엔 지금의 국립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향교들이 설립되어 지역 주민들의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익산의 여산 향교를 소개하기 위해 찾아가 보았습니다.

 

 

 

 

여산 교동마을의 여산 향교

 

 

 

 

여산 향교는 여산 동헌 등이 있는 여산 소재지에서 조금 떨어진 당제산(186m) 남쪽 자락에 있는데요. 교동마을 입구 도로변에 여산 향교 표지석이 세워져 있으며,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여산 향교의 홍살문이 방문객을 반겨주고 있습니다. 홍살문이 오랜 세월을 이겨낸 듯 나무색으로 탈색되어 고풍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관아건물이나 향교 등의 입구에는 어디든지 붉은 칠을 한 나무로 만든 문인 홍살문이 있는데요. 홍문 또는 홍 전문이라고도 불립니다. 둥근 기둥 2개를 양쪽에 세우고 위엔 지붕 없이 화살 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웠으며, 그 중간에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태극 문양 위쪽의 지창은 통상 2지 창 또는 3지 창으로 되어있습니다.

 

 

 

 

옛날부터 향교가 있는 마을은 교동(校洞)이라 불리었는데요. 향교동을 줄여 교동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산 향교 역시 여산면 교동마을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향교는 예전부터 지방관청 등이 있는 곳으로부터 떨어진 곳에 세웠었는데요. 여산 향교 역시 동헌에서 걸어서 20여 분 걸리는 당제산 아래 시골 마을에 있습니다. 향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조용한 곳에 향교를 세운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산 향교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향교인데요. 1403(태종3)에 어진 선비나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역 주민들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이 지역 유림에 의해 중건된 이후 1917년 전면 보수를 하였습니다. 그 뒤 여러 번의 중건과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여산 향교는 경사진 언덕 지형 위에 크게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와 서재, 내삼문, 외삼문 관리사 등으로 구분되어있는데요. 건축형태로는 강학 교실인 명륜당이 앞에 있고 제향 공간인 대성전을 뒤에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 배치형태를 따르고 있습니다.

 

 

 

대성전과 명륜당 등 향교의 구성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는 외삼문을 통해 향교로 들어서면 커다란 첫 건물이 명륜당인데요. 명륜(明倫)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으로 명륜당은 글을 배우고 익히고 수업하는 강당입니다.

 

 

 

 

명필을 자랑하는 명륜당 현판이 한눈에 들어오는데요. 현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신안주희(新安朱熹) ()라고 쓰여 있습니다. 다른 곳의 향교에서는 주지번의 글씨 현판도 볼 수 있는데요. 여산 향교는 중국 신안의 주자 성리학의 창시자 주자 희의 글씨입니다.

 

 

 

 

명륜당에서 내삼문을 통해 들어서면 제일 높은 곳 정 중앙에 화려한 단청을 자랑하는 대성전이 있습니다. 대성전은 위패를 모신 곳인데요. 공자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대성전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 반의 맛 배 지붕으로 되어있습니다. 대성전(大成殿)이란 일필휘지의 현판 글씨가 눈에 딱 띄는데요. 현판 글씨는 조선 시대 최고의 명필인 한석봉이 해서로 썼으며 대부분의 향교에서는 이 글씨를 복각하여 걸고 있다고 합니다.

 

 

 

 

내삼문 양옆으론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요. 서쪽의 서재와 동쪽의 동재는 유생들이 숙식하던 지금의 기숙사입니다.

 

 

 

 

명륜당 마당에서 관리사로 통하는 문이 활짝 열려있어 들어가 보았는데요. 관리사에는 사무실 간판도 달린 방이 있으나 관리직원이나 향교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전교 님은 뵐 수가 없었습니다.

 

 

 

 

1984년에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83호로 지정된 여산 향교는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도입되면서 교육의 기능은 잃고 오직 제향 기능만을 유지하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자물쇠가 잠겨있어 대성전과 명륜당 내부는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요. 문화재 관리문제로 향교 운영책임자인 전교의 허락이 있어야 대성전을 관람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익산 여산 향교는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받아 운영하였으며, 교관 1명이 70여 명의 교생을 가르친 규모가 상당히 큰 향교이었습니다.

 

 

 

 

여산 향교를 나와 여산 동헌도 잠시 돌아보았는데요. 조선 시대 여산군 관청입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으며, 건축 시기는 조선 말기로 알려졌습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보호수들이 동헌의 역사를 증명하며 동헌을 지키고 있습니다.

 

 

 

 

때마침 서울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온 관광객 한팀이 동헌 관광에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어깨가 으쓱 익산 여산의 유명세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교육과 제례를 담당했던 향교가 이제는 문화재로서 우리와 후손들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향교 대성전의 제례의식 역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하여 머지않아 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후세까지 잘 보전함은 물론이고, 선비체험과 서예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우리 현대인에게 인성교육의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2022~2023년은 익산 방문의 해입니다. 익산 여산 향교를 비롯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미륵사지와 미륵사지석탑, 왕궁리 유적과 왕궁리 오층탑, 국립익산박물관과 익산 왕궁박물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익산 보석박물관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다양한 고장이 전북 익산입니다. 백제왕도 익산,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익산으로의 역사여행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여름엔 익산에서 역사여행을 즐겨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