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과 산행/◈익산시블로그기자단

(익산항일여행)4.4만세운동 102주년과 광복76주년 기념☞ 민용기 열사 혼과 얼을 찾아서

와이투케이 2021. 8. 14. 15:48

 

민용기 열사 혼과 얼을 찾아서

4.4 만세운동 102주년 기념, 광복76주년 기념과 보훈회관 개관기념

 

 

 

 

지난 6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유공자들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익산시 보훈회관이 개관식 행사를 하였습니다. 이날 행사는 6·25전쟁 제71주년을 기념해 그 의미를 되새기고 참전 호국영웅에 대한 예우와 존경을 기리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코로나 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익산시장을 비롯한 익산 시의회 의장, 전북 서부보훈지청장, 경찰서장, 보훈 단체장과 회원 등 60여 명이 참석했으며, 국가보훈대상자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보훈회관 건립을 진심으로 축하했습니다.

 

 

 

 

익산지역 9개 보훈단체 및 3,000여 명의 국가유공자와 유족의 구심체 역할을 하는 익산시 보훈회관의 건립은 기존 건물의 노후화로 안전상의 문제와 함께 공간도 턱없이 비좁아 보훈단체 전부를 수용하지 못하는 점 등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20204월 착공하여 1년여의 공사 기간을 거쳐 익산시 신동의 옛 그 자리에 지하 1층 지상 3층 연 면적 1,320규모로 건립되어 전몰군경유족회, 6·25 참전 유공자회, 상이군경회 등 9개 보훈단체가 입주하였습니다.

 

 

 

 

익산 보훈회관 개관에 맞추어 4.4 만세운동 102주년과 광복 76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익산의 독립유공자 관재 문용기 열사의 발자취와 흔적을 따라가며 열사의 혼과 얼을 다시 한번 기려보았습니다.

 

 

 

 

문용기 열사는 어떤 분이었을까요?

 

 

 

 

문용기 열사는 1878519일 전북 익산시 오산면 오산리 관음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이 한학을 공부해 서당에서 훈장을 하던 열사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것은 기독교 귀의였는데요. 24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군산 영명 학교(현 군산 제일중고)에 한문 교사 겸 학생으로 입학을 하여 보통과 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문 열사가 30세가 되던 1908년 기독교계 학교로써 처음 개교한 목포 짯 왓킨스 중학교에 늦깍기 학생으로 입학해 한문 선생을 겸하며 신학문을 공부하였으며, 이곳에서 이승만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또한, 문 열사는 일찍이 익산 남전교회에서 전킨, 부위렴, 해리슨 목사 등을 만나면서 영어공부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익히기 시작했는데요. 이후 중학교 졸업 후 문 열사는 함경도 갑산에서 금광을 경영하는 미국인의 통역사로 8년을 근무하며 받은 봉급을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자금으로 보내는 등 이때부터 나라의 독립에 큰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문 열사는 1919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고향으로 내려와 모 교회이며 어머니와 아내가 다니고 있던 남전교회를 찾아 담임목사 최대진의 배려로 남전교회가 설립한 도남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습니다. 도남 학교에서 문 열사는 학생들을 설득하고 김치옥과 박성엽은 교인들을 설득하여 조직을 만들고 담임목사인 최대진 목사와 함께 44일 솜리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열기로 계획하였습니다.

 

 

 

 

열사의 얼과 혼을 찾아 익산 항일 유적지 탐방

익산 남부시장 3.1 독립운동 4.4만세 기념공원

 

 

 

 

익산에는 3.1운동과 4.4 만세운동 추모비가 3곳에 있는데요. 솜리 장터(현 익산 남부시장)와 오산 남전 교회, 익산역 광장 등입니다. 열사의 얼과 혼이 숨 쉬고 있는 3곳의 항일 성지와 그리고 열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생가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솜리 장터의 3.1운동 4.4만세 기념공원인 민용기 열사 기념공원입니다. 102년 전 191944일 정오는 익산에서는 잊어서는 안 되는 운명의 시간인데요. 익산 최대의 만세운동은 44일 솜리 장터에서 시작되었고, 이 만세운동의 중심에는 문용기 열사가 있습니다. 서울에 3.1만세운동이 있다면 익산에는 4.4 만세운동이 있습니다.

 

 

 

 

익산 솜리 장터는 19193.1운동의 영향을 받아 44일 익산 오산면 남전교회 최대진 목사와 도남학교 문용기 선생이 주도한 가운데 1천여 명의 군중이 만세를 외치며 일본에 항거한 곳으로 3.1 만세운동에 버금가는 익산 최대의 독립운동인 4.4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입니다.

 

 

 

 

문용기 열사가 숨을 거둔 현장인 솜리 장터 대교 농장 앞의 3.1 독립운동 4.4 만세운동 기념공원에는 문용기 열사의 동상과 순국 열사비가 세워져 있으며 그 주변이 무궁화 꽃과 백일홍으로 가득한 문용기 열사 기념 소공원입니다.

 

 

 

 

광복 70년인 19154월 독립을 이끈 열사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문용기 열사의 동상을 세우고 제막식이 열리었는데요. 문용기의 열사의 불끈 주먹 쥔 모습은 일제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았던 열사만의 기백을 역력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열사 동상 옆의 순국 열사비는 1919년에 벌어진 독립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으며 열사비의 휘호와 비문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친필로 하사했습니다.

 

 

(민열사 기념공원 동영상)

 

 

열사 기념공원 주변을 역사교육의 장으로 조성하여 매년 31일 즈음하여 4.4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벌이고 있으며, 익산 4.4 만세운동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익산시는 이를 기리기 위해 옛 대교 농장 자리에 항일독립운동 기념관을 조성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4.4만세 운동이 일어나게 된 동기는 3.1운동으로부터 시작하는데요. 익산은 김제평야와 함께 일제의 식량 수탈의 거점지역이었으며 솜리 장터 대교 농장에는 곡식 창고가 있었습니다. 1910년 조국이 일본의 손에 넘어가자 곡창지대 수탈이 갈수록 심해지고 농장 지주들은 날로 부를 축적하는 데 반해 빈곤에 허덕이는 오산면 등 평야 지대 주민들은 빈곤에 허덕이며 박탈감과 민족적 울분이 가슴속 깊이 쌓여만 갔습니다.

 

 

 

 

때마침 1919년 서울에서 시작된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었고, 전북지역에서는 35일 군산의 만세시위가 도화선이 돼 310일 익산시에서 만세운동이 불발로 끝난 데 이어 326일 이리역(익산역)에서 목포행 열차 승객들과 역 앞 군중들이 함께한 만세시위가 일어났으며, 민용기 열사의 익산 4.4 만세운동까지 이어지는 등 본격적인 항일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191944일 남전 교회에 모인 150명의 군중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솜리 장터로 향했는데요. 장터에는 조선독립만세 라고 쓰인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당시 익산 시는 일본군 보병 중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만세운동을 펼치기에 어려운 상황이었는데요. 그런데도 군중은 삽시간으로 불어났고 낮 12시경 흰색 두루마기를 걸친 기골이 장대한 40대 문용기 열사가 운집한 군중들 앞에 서서 위풍당당한 기세와 우렁찬 목소리로 조선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하늘을 찌르는 우레와 같은 함성이 솜리 장터를 가득 메웠고요. 문 열사는 군중을 이끌고 대교 농장으로 향했으며. 1만 명에 달하는 군중이 농장에 접근하자 일본 헌병들은 위협 사격을 했으며 급기야 맨손으로 만세를 부르는 군중을 향해 실탄 사격을 하고 곤봉과 갈고리로 무장한 일본 소방대와 농장원들이 닥치는 대로 휘둘러댔는데요. 문 열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군중을 독려하며 더 큰 목소리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었습니다.

 

 

 

 

이때 일본 헌병이 태극기를 들고 있던 문 열사의 오른손을 일본 칼로 잘랐고요. 마침내 헌병들은 그를 에워싸고 총검으로 가슴과 복부, 옆구리를 찌르고 후두부를 강타해 열사는 이렇게 41세 젊은 나이에 솜리 장터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본의 잔인무도한 폭력으로 장렬하게 순국하게 되었습니다. 문용기 열사의 그 날의 마지막 외침은 여러분 나는 이 붉은 피를 조선독립에 바치겠습니다. 이었습니다.

 

 

 

 

문 열사가 입었던 피로 얼룩진 흰색 한복 저고리와 두루마기는 1945년 해방이 되던 해에 독립기념사업회에 제1호로 기증해 현재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에 전시하고 있고요. 1992년 문 열사의 유해는 마을 뒷산의 공동묘지에서 이장하여 대전 국립묘지의 독립유공자 유택에 안장됐으며, 정부는 문 열사의 공을 기리어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을 추서했습니다.

 

 

 

 

오산 면사무소의 순국열사 충혼비

 

 

 

 

열사의 고향 익산 오산의 면사무소 마당 한쪽에는 순국열사 충혼비가 세워져 있는데요. 44 만세운동에서 순국한 문용기 선생, 도남 학교 학생 박영문, 남전 교회 청년 장경춘을 기리는 충혼비입니다.

 

 

 

 

원래의 충혼비는 열사들의 충혼을 기리기 위하여 1946년경에 오산면민들이 건립하였으나 전쟁 등을 겪으며 훼손되었다 하는데요. 현재의 충혼비는 20101126일 익산시장과 열사들의 유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전방() 조규옥 회장, 장영만 선생, 오산면민의 뜻을 모아 새롭게 만들어 제막식을 하면서 순례객을 맞고 있습니다.

 

 

 

 

문용기 열사의 고향 마을과 생가

 

 

 

 

문 열사의 고향 마을은 오산면 관음마을인데요. 오산 면사무소 서쪽 서오산을 지나면 관음교가 나오고요. 이곳이 관음마을이며 문 열사의 고향 마을입니다. 마을 입구 또는 도로변에 문 열사의 생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나 표지석 하나가 없어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는데요. 마을 주민들에게 여쭈어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문 열사의 생가는 잘 보존되어 있으나 현재는 후손들이 살지 않는 듯 어수선하여 마치 폐가처럼 보였으며 넓적 서러운 마당엔 지금도 누군가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민 열사의 생가는 옛날 시골집치곤 무척 큰 규모의 기와집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문 열사가 나고 자란 곳이라 생각하니 열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였으며, 고즈넉한 집의 모습에 열사의 성품을 보는 듯하였습니다.

 

 

 

 

한옥 풍의 생가 건물과 넓은 마당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인데 대문의 위치가 남쪽에서 서쪽인 지금 자리로 바뀌었고, 대문 옆에 있는 행랑채도 허물었다고 하는데요. 열사의 후손들이 익산 시내에 살며 가끔 들려 농사도 짓도 한다고 마을 주민들이 전해주었습니다.

 

 

 

 

익산 4.4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한 문 열사의 생가인데 관리가 안 되고 초라하게 보여 아쉬운 마음이 컸는데요. 마을 입구에 문 열사 생가 안내판이라도 세우고 생가도 잘 관리하여 익산 역사여행 또는 항일여행코스로 자리매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4.4 만세운동의 진원지 남전 교회와 도남 학교

 

 

 

남전 교회는 익산의 근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작은 산 하나도 전혀 보이지 않는 너른 들판 한가운데에 있는 교회로서 19193.1운동에 이어 일어난 4.4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혼을 일깨운 발원지로 손꼽히고 있는데요. 솜리 장터에서 일본 경찰에 의해 순국한 문용기 열사, 박영문 열사, 장경춘 열사, 박도현 열사를 낳은 교회입니다. 이곳은 현재 한국 기독교 사적지 18호로 지정이 되어있습니다.

 

 

 

 

문 열사와 그의 가족이 다녔으며 익산 4.4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를 했던 익산 남전 교회는 18971015일에 창립된 익산에서 제일 오래된 교회인데요. 열사는 집에서 십여 리를 논과 밭길을 따라 이 남전 교회에 다녔다고 합니다.

 

 

 

 

교회 앞마당엔 3.1 독립운동과 4.4 만세운동을 기리는 나라 사랑 동산이란 이름으로 공원이 별도로 조성되어있습니다. 공원에는 태극기가 여기저기 펄럭이고 있고 무궁화 꽃이 만개하여 그때 그 당시 만세운동을 외치던 문용기 열사를 생각하게 하는 공원이었습니다.

 

 

 

 

열사가 선생으로 있었던 도남 학교는 남전교회가 19104월 오산면 신덕리에 세운 학교로서, 조선총독부의 강제적인 교육통제 정책으로 폐교된 1942년까지 학교 이름을 바꾸어 가며 32년 동안 오산면 일대 민족교육의 요람이었습니다.

 

 

 

 

항일여행 코스로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익산역 광장이었습니다. 문 열사를 비롯하여 4.4 만세운동에서 일제에 의해 무자비하게 희생된 열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익산역 광장 4.19 혁명 탑 옆에 3.1 운동 기념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1971815일 동아일보사가 세운 기념비로서 문용기. 박영문. 장경춘. 박도현. 서정만 열사의 이름과 혼이 새겨져 있습니다.

 

 

 

문용기 열사를 기리며……

 

 

 

익산 4.4 독립 만세운동 102주년입니다. 문 열사를 비롯한 독립 운동가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잘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 익산의 항일여행 코스이었습니다.

 

 

 

 

일제에 대한 저항으로 독립을 이끈 위대한 위인 문 열사가 익산 시민이라는 것도 자랑스럽고요. 31운동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익산 44 독립 만세운동이 우리 가슴 속에 깊이 새기어 오랫동안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익산 남부시장의 3.1독립만세운동 4.4 독립 만세운동 기념공원의 문 열사의 동상과 순국 열사비, 오산 면사무소의 순국열사 충혼비, 문용기 열사의 생가, 익산 남전교회 그리고 익산역의 3.1운동 기념비까지 익산 항일 유적지 순례코스로서 익산 시티투어버스도 오가는 익산의 유명한 여행코스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