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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를완주하자) 완주 정자 문화재 탐방 전망 좋은 완주 구이 남계정(210509)

와이투케이 2021. 5. 26. 16:49

 

전망 좋은 완주 구이 남계정

완주 정자 문화재 탐방

 

 

 

 

예로부터 강물이 흐르거나 계곡과 어우러져 산세가 아름다운 곳이면 으레 이 정자가 세워져 있습니다. 옛 선비들은 경관이 아름다운 강가나 계곡 등에 정자를 세우고 시 한 수를 읊으며 학문연구와 그리고 풍류도 즐겼는데요. 그래서 정자는 선비들의 인품과 풍류를 같이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계절의 여왕 5월인데도 코로나 19 확산으로 외출조차 하기 어려운 요즘입니다. 코로나 19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완주에 있는데요. 삼례 비비정과 더불어 완주의 대표적인 정자인 구이 남계정을 소개합니다.

 

 

 

경관이 아름다운 구이 남계정

 

 

 

남계정은 완주 구이면 원두현 마을 산모퉁이 끝자락 가파른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 앙증맞을 정도로 작은 정자인데요. 조선 중기의 정자들이 대부분 강을 끼고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 게 특징이듯, 이곳 남계정 역시 구이저수지 둑방이 없던 시절 경각산에서 계곡을 이루어 정자 아래로 흐르는 물길이 아름다운 곳에 세운 정자입니다.

 

 

 

 

지금은 정자 아래로 마을 고샅길이 나 있고 온통 논과 밭이지만, 441여 년 전 정자가 세워질 당시에는 분명 경각산에서 시작하는 계곡 물길이 남계정이 있는 산자락을 돌고 돌아 지금의 삼천 천을 거쳐 만경강으로 흘렀을 것입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절벽 위의 남계정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얼마나 풍광이 아름다우면 이곳에 정자를 세웠을까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어있는 남계정은 조선 중기 유학자인 김진이 말년에 벼슬을 내려놓고 낙향하여 정자를 세우고 본인의 호를 본떠 남계정(南溪亭)이라 하였으며, 그는 오직 학문과 후학들의 양성에만 정성을 쏟으며 덕망을 쌓아 수많은 사람이 그를 우러러보았다고 하는데요. 그의 호인 남계 역시도 남쪽에 있는 그의 고향 계곡마을을 본떠 호를 지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남계정은 선조 13(1580)에 신축한 후 441년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완주군의 귀중한 정자 문화재입니다. 그 후 현종 14(1673)에 중수하고, 현종 10(1859)에 중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니 오랜 세월을 지금껏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자 문화재입니다.

 

 

정자 위에서 바라보면 앞으론 모악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여 시원한 조망을 안겨주고요. 고개를 우측으로 돌리면 경각산과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아마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악산이 제일 아름답지 않나 생각해보았습니다.

 

 

 

정자로 오르는 길이 무척 가파르다 못해 계단 길도 갈 지() 자로 만들어 놓았는데요.

그 길목 입구에 아름드리 노거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정자의 역사를 증명하며 남계정과 원두현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남계정 바로 앞에 거주하고 있는 최옥녀(89) 할머니는 김제 금구에서 시집을 와 이곳에서만 71년 동안 남계정을 바라보며 살았다고 하는데요. 남계정과 원두현 마을에 대한 옛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Q. 남계정이 440년이나 된 오래된 정자인데요. 할머니가 젊은 시절 남계정에 대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가요?

A. 옛날에는 남계정에서 한문을 가르치었는데 우리 집 아이들도 배우고 마을 아이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한문을 배웠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 모습 그대로이었는데요. 정자 담장만 몇 년 전에 만들었습니다.

 

 

 

 

 

Q. 처음으로 이곳으로 왔던 그 시절의 남계정 모습과 주변 모습은 어떠하였는가요?

A. 이 아름드리 느티나무 앞으로 경각산의 물이 사시사철 흐르는 넓은 계곡이었습니다. 구이저수지 제방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바로 정자 앞 계곡은 물길이 풍부하고 참게와 가물치, 메기, 장어까지 잡고 했는데요. 길 다란 그물망을 물길에 일렬로 세워두기만 하면 참게가 그물망에 걸리곤 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이 많이 납니다.

또 이 느티나무 앞이 바로 원두현 마을 아낙네들의 빨래터이었는데요. 마을 아낙네들이 온종일 이곳 빨래터에 앉아 빨래하며 수다도 떨었던 쉼터이었습니다.

 

 

 

 

Q.원두현 마을이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큰 마을이었는가요?

A.그럼요. 그 당시에도 100호정도 되는 큰 마을이었는데요. 지금은 이사 나간 사람도 있고 80여 호 되는가 봅니다.

 

 

 

 

Q. 남계정에 대해 또 생각나는 것이 있나요?

A. 맞아요. 이곳 남계정 부근에 커다란 용이 살았나 봅니다. 제가 50살 때 정도이니 40년 전에 남계정 옆에서 엄청 큰 용이 나와 구이저수지 둑방 쪽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많은 마을 주민들이 논밭에서 일하면서 용을 바라보며 용이다. 용이다. 소리를 지르곤 했는데요. 용이 달려가는 바람 같은 소리가 얼마나 크게 낫는지 천둥이 치는 소리 같았어요.

많은 마을 주민들이 용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용의 승천을 마을의 길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할머니 인터뷰에 응해주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남계정은 비교적 작은 정자로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 측면 2칸의 대청마루와 아담한 2평 남짓한 작은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 목조 건물입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처마의 공포(栱包)는 주심포 양식인데요. 마루에는 ㄱ자형으로 정면과 측면에 걸쳐 퇴(退]를 두었습니다.

 

 

 

 

지면에서 약간 올려 만든 마루에는 일반가옥처럼 전면에 출입문을 내고 측면에 한 쌍의 두 짝 여닫이 덧문을 달았는데요. 방은 마루를 통해 출입하고 전면으로는 출입구가 없으며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들창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루 위 벽면에는 남계의 학문과 덕을 찬양하는 많은 편액이 걸려 있는데요. 남계정 중수기(南溪亭重修記)와 중건기(重建記)들도 모두 편액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전라도 관찰사 신응시가 손으로 쓴 서문에는 남계가 이 정자를 세우게 된 것은 인지(仁智)의 즐거움을 누리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외에도 의병장 백록 고경명, 중봉 조헌이 남계정에 와서 지은 글에 남계 김진이 문장가이며 성리학도 으뜸이며 예의를 실천한 선비임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남계정은 흐르는 계곡물과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남계의 어진 인품으로 많은 선비가 이곳을 찾아왔다는 것을 편액을 통해 알 수가 있었는데요. 그 후에도 남계의 아들과 후손들이 학문도 닦고 교류하는 공간으로 계속 활용하였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도 그의 후손들이 마을을 지키며 남계정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남계정의 밑의 절벽 아래 바위에는 한문으로 남계정(南溪亭)이라고 암각 글씨가 새겨 있는데요. 그 옆에는 유지(遺址)라는 작은 글씨도 새겨져 있습니다. 누가 이 글씨를 새겨 놓았을까? 궁금했는데요. 아마 남계 또는 그 후손이 직접 새기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남계정 아래에는 나란히 서 있는 2기의 비석도 있는데요. 도재김선생추모비와 통천김씨효부인 유인전주유씨정려비입니다. 깨끗한 비석으로 보아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이며 남계정(南溪亭)의 김진(金珍)과 관련이 있는 비석으로 여겨집니다. 남계정과 그 주변은 조선 중기의 학자 남계 김진의 숨결과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빨래터가 있는 정겨운 시골 마을 구이 원두현 마을

 

 

 

남계정과 딱 붙어있는 원두현 마을은 구이저수지 제방 아래 첫 마을이고요. 전주에서 구이면 소재지와 순창으로 가는 옛 도로변에 있는 마을입니다. 남계정과 도로 사이에 보리굴비 정식과 연잎밥 정식 맛집 목향맛집이 있는데요.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고요. 목향맛집의 보리굴비로 점심을 해결하고 본격적인 남계정과 원두현 마을 구경에 나섰습니다.

 

 

 

 

원두현 마을은 600년 전쯤에 통천 김 씨들이 처음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전통 있고 오래된 마을인데요. 마을회관 앞 광장에 옛날 방앗간 집이 있고 그 앞에 보호수로 지정된 300년 노거수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남계정 앞의 노거수와 비슷한 크기이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심었을 것으로 주민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원두현 마을은 지금도 82가구 95세대가 사는 시골 마을치곤 큰 마을이고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구이저수지에서 전기 발전을 위해 내려오는 물길이 관개수로를 따라 마을로 흐르고 있는데요. 남계정 앞에 있었던 옛날 빨래터가 이젠 마을회관 앞에 있습니다. 지금도 마을 할머니들이 빨래도 하고 논일 밭일 후 손과 발도 씻고 농기구들도 씻고 있는 곳입니다.

 

 

 

 

원두현 마을은 구이저수지 둑방 덕분에 매년 왕벚꽃 축제가 열리는 완주의 벚꽃 명소로 알려진 마을이고, 남계정을 세운 남계가 살았던 마을입니다. 구이저수지 주변은 둘레길이 만들어져 완주 군민과 전주시민까지도 많이 찾는 유원지로도 널리 알려져 덩달아 원두현 마을도 유명한 시골 마을이 되어있습니다.

 

 

 

 

완주군 구이면에서는 구이저수지 둘레길 걷기대회도 열고 있고요. 여름이면 구이저수지에서 전국카누경기대회가 개최될 정도로 카누· 조정 등의 훈련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구이저수지와 연계한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 모악산, 경각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등 주변 관광코스로도 유명하여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는 원두현 마을입니다.

 

여러분! 완주 구이면에 있는 남계정과 원두현 마을 많이 사랑해주시고 원두현마을로 놀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