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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염원 완주 정농통일공원 황해도 이주민 정착 마을 완주 정농 마을

와이투케이 2020. 12. 1. 21:01

 

통일의 염원 완주 정농통일공원

황해도 이주민 정착 마을 완주 정농 마을

 

 

우나라에서 실향민이라고 하면 주로 6.25 전쟁 중에 월남한 이북 출신 실향민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굳세어라 금순아 옛 노래에서 생생하게 표현되는 흥남부두 철수 작전에서 남한으로 이주한

사람들도 있으며, 어느 날 갑자기 인민군이 마을로 들이닥치는 바람에 가족 하나 없이

피난 나온 실향민들도 있는데요.

625전쟁 중에 황해도 이주민들이 정착한 마을로 이산가족들의 그리움이 담긴 마을이

완주 이서에도 있습니다.

 

 

대부분 이북 출신 실향민들이 그러하듯이 한국전쟁 이후 자신들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었다고 하는데요.

돌아가지 못하고 우리나라에서 정착한 실향민 마을이 속초 아바이마을을 비롯해

경기 북부 지역, 부산, 인천 등등 전국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

완주 이서에도 실향민 마을인 정농 마을이 있고, 정농 통일공원이 있는데요.

1.4 후퇴 때 피난 온 사람들이 피땀 흘리며 땅을 개간하고 손수 일구어 마을을 만들고.

이 마을에서 반평생을 넘게 살아온 북한이 고향인 실향민 마을입니다.

 

 

마을 이름과 공원 이름에서 이곳이 북한 이주민들의 정착촌이란 것을 금방 알 수 있는데요.

6.25 전쟁 70주년이 가기 전에 북한에서 이주하여 함께 모여 살고 있는 정농 마을과

마을 앞에 조성되어있는 정농 통일공원과 함박골 공원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정농 통일공원과 함박골 공원

 

 

공원의 작은 광장에 주차하고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정농 통일공원은 완주 혁신도시의 농원 삼거리에서 이서 물고기 마을로 가는 길 왼쪽에

있는 공원으로, 정농 마을과 도로 사이에 마을을 따라서 길게 조성되어있는 공원인데요.

하나의 공원처럼 보이지만 통일공원과 함박골 공원으로 구분되어있습니다.

 

 

공원을 감싸고 있는 정농 마을이 북한에서 이주한 실향민 정착 마을이라서 통일의 염원을

비는 의미에서 통일공원이라고 하였답니다.

공원 가운데 산책로가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주민들이 농사지으며 산책도 하고 쉴 수 있도록 주민 편의시설이 만들어져 있는데요.

파고로라고 하는 정자와 각종 운동기구, 등의자인 벤치 등이 공원 안에 세워져 있습니다.

 

 

두 공원이 합해서 3,765(1,139) 정도의 작은 소공원이었습니다.

포털 다음에는 이 공원이 완주혁신도시에서는 제일 크게 나와 있고, 위치가 지금의 공원

앞으로 되어있어 큰 기대를 하고 찾아왔는데요.

포털사이트 다음의 정보가 많이 차이가 나기도 하고 정보가 틀린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북한 실향민 정착 마을 완주 이서 정농 마을

 

 

완주 정농 마을은 완주혁신도시 인재개발원 바로 옆에 있는 마을인데요.

지방자치 인재개발원에서 물고기 마을로 가는 길 농원 삼거리에 마을 표지석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대대손손 이어진 오래된 자연마을은 아니고요.

지금은 옛날과 달리 100호 정도의 마을이며, 농촌 마을치곤 큰 마을이며, 북한 이주민

정착 마을이니 반세기는 훨씬 넘은 상당히 오래된 마을입니다.

가까이 황방산과 완주혁신도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형이 상당히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농 마을에 대해 몇 가지 궁금한 이야기가 있어 부재중인 이장님 대신 마을의 이주 1세대 어르신과 다른 곳에서 이사 온 주민 두 분께 여쭈어보았습니다.

 

 

먼저 정농 마을에 정착하신 이주민 1세대인 홍순철(83) 어르신께 몇 가지 여쭈어보았는데요.

경운기에 김장배추를 가득 싣고 내려가는 어르신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수확한 배추를 이웃에 그냥 나누어 주시는 모습에 예나 지금이나 농촌 마을의 인정은

그대로라고 생각해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경운기를 직접 몰고 내리막길을 내려오시는 모습을 보니 건강해 보이십니다.

정농 마을 초기에 정착하신 어르신 같은데요?

A. 예 맞습니다. 초창기 실향민으로 이주 1세대로 홍순철입니다.

 

 

Q. 힘들게 농사지으신 배추를 이웃에게 나누어 주시는 훈훈함을 직접 보았습니다.

시골 인심은 여전한데요. 이웃과는 어떤 사이인가요?

A.그럼요. 이웃과 당연히 나눠야지요.

수십 년을 같은 마을에서 살아온 이웃이고, 같은 황해도 출신이라서 형제 같고 더욱더

정이 있는 이웃입니다.

 

 

Q. 이주 당시 실향민으로서 이 마을에 정착하는데 고생도 많고 애환도 많았을 것 같은데

고향은 어디고 언제 내려오셨는가요?

A. 고향은 황해남도 송화이고요.

제가 13살 때인가 6, 25 전쟁 때 피난대열을 따라 무작정 남으로 피난 내려와 이곳에

정착하였습니다.

 

 

Q. 정농 마을에 처음 정착하실 때 몇 집이었고, 이주민은 몇 사람 정도이었으며, 지금은

몇 분이 계시나요?

A. 처음에 200호 정도 되는 큰 마을이었고요. 모두가 황해도 출신으로 아마 300명 이상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100세대 정도이고, 대부분 돌아가시고 1세대 중에서 몇 분만 생존해계십니다.

 

 

Q. 옛날 초창기 어려움과 고생했던 것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부의 지원은요?

A. 말도 말아요. 옛날 그 시절 모두가 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저희 들 역시 무척 더

어려웠지요.

 

 

정부와 미군의 도움으로 옥수숫가루로 연명을 했으며, 둑새풀 죽을 끊이어 먹기도 하고,

밥 한 끼 얻어먹으려고 온종일 남의 집에서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품팔이하고 일하여 땅도 사고 나중에 통일벼가 나오면서 배부르게 먹고 살고 집도 새로 짓고 지금에 이르렀답니다.

 

 

전원주택지로 유명한 정농 마을

 

 

정농 통일공원이 끝나는 부근에 전원주택들이 보이고 마을 이장님 댁이 있어

들어가 보았습니다.

입구에 웨스턴 힐 혁신이란 표지판이 있었는데요.

이장님을 뵙지 못해 마을 어르신에게 여쭈어보았습니다.

 

 

Q. 언덕 위의 교회 옆에도 전원주택들이 보이던데요.

이곳 역시 정농 마을 속의 전원마을인가 봅니다.

A. 맞습니다. 이곳 실향민들도 새로 전원주택을 지어 사는 분들도 여러 집 있고요.

저처럼 객지에서 이서가 좋아 찾아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광주에서 정년퇴직 후 친구소개로 이서 정농 마을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Q. 이곳 마을을 보니 지대가 높고 경관이 뛰어나던데요. 그죠?

A 그럼요. 황방산과 혁신도시 아파트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도 장관이고요.

저기 언덕 위로 가면 서해로 떨어지는 일몰도 볼 수 있는 공기 좋고 살기 좋은 마을입니다.

멋지게 정농 마을 소개하여주길 바랍니다.

 

 

정농 마을 구석구석

 

 

두 분의 인터뷰를 마치고 마을 한 바퀴 구석구석 돌아보았습니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언덕에도 시내버스가 다니는 큰 길이 있는데요.

물고기 마을 가는 길에서 보면 경사진 마을로서 이서에선 지대가 높은 지역입니다.

골목엔 예전 1세대 실향민들이 살았던 빈집들도 보입니다.

 

 

옛날 어려운 그 시절엔 좁은 골목길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지게질로 농사를 지었기에 큰길이 필요 없었지요.

논두렁 밭두렁 등 작은 땅이라도 콩 한 포기라도 심어야 했던 그 시절의 작은 골목길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제일 높은 언덕 위엔 50년 역사의 이서 신광교회가 있는데요.

아마 실향민들의 정착 초기 어려운 시기에 이주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교회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교회 입구 큰 길가의 전원주택들이 유럽풍으로 무척 아름다워 보이는데요.

마치 유럽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멋스러운 전원주택 몇 채가 마을 분위기를 훤하게

바꾸어 주고 있었습니다.

입구의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는 어느새 예수의 탄생을 축하해주고 있었습니다.

 

 

정농 마을이라고 쓰여 있는 버스 정류장 건너편도 정농 마을인데요,

이 골목엔 개인이 지은 정자가 보이고 정자 앞에는 오토바이 등 고철들이 많이 쌓여있는데요.

 

 

고물상이 아니고 고철을 이용하여 작품도 만드는 곳인가 봅니다.

정크 아트 작품들이 마당 가득하여 주인 없는 집 마당을 한참 들여다보았답니다.

 

 

북녘땅에 부모님과 형제들을 남겨두고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남한으로 피난 내려와

살기가 쉽지 않았을 정농 마을의 실향민들.

동향 사람들과 서로 이해하고 서로 도우며 똘똘 뭉쳐 자금까지 부지런하게 열심히

살아왔는데요.

대부분 황해남도 송화군 출신인 이 마을의 이주민들은 고향이 그리울 때면 함께 모여

고향에서 먹었던 떠덕범벅, 홍어 찌게, 닭온반, 등등 황해도 음식을 자주 해 먹는다고 합니다.

 

 

정농 마을은 주로 배와 고구마, 감자 등이 특산물인데요.

KBS1 한국인의 밥상에도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배우 최불암과 함께 시간을 이긴 기억의 맛 이산가족 밥상편을 정농 마을에서

촬영하였다고 합니다.

 

 

한국전기안전공사 등등 공공기관들 역시 관심을 가지고 자매결연도 맺고 봉사활동도

계속 이어지는 마을이 완주군 이서면 정농 마을입니다.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가득 넘치는 정농 마을이 되길 바랍니다.

 

 

부모를 따라 어릴적 배를 타고 남한 땅을 밟은 실향민 1.5세대들로, 마을 전체 200여세대 가운데 80%가 실향민 가구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지난 19511.4후퇴를 시작으로 그해, 1952, 1953년 사이 수백 여 차례로 나눠 황해도 인근 항구에서 목선이나 어선, 뗏목 등을 나눠타고 군산항으로 들어왔는데요.

이후 군산과 당시 전주 조촌면 등을 거쳐 일부는 부산과 전주, 서울 등까지 흩어져 지내다 완주군 이서 농원에 정착한 실향민들입니다.

이 곳은 대다수가 80대인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이서정착농원으로 대부분 황해도 출신으로 그중에서도 송화군 출신이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