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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백제역사여행)익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찾아서 백제 역사여행

와이투케이 2023. 6. 13. 23:58

 

(익산세계유산1) 국립익산박물관 옆에서 바라본 미륵사지 전경▼ⓒ유연길

 

익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찾아서

백제 역사여행

 

 

(익산세계유산2)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미륵사지 표지석▼ⓒ유연길

 

유엔(UN)의 전문 기구인 유네스코(UNESCO)가 세계문화유산과 함께 종종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국제 연합교육. 과학. 문화기구(United Nations Education,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인데요. 명칭에서 보듯 대외적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유엔기구인데요. 이 중에서 유명한 값진 일은 세계유산 지정입니다. 세계유산은 세계문화유산과 세계자연유산, 복합유산 세계기록유산, 세계무형유산 등으로 구분되는데요. 세계문화유산은 각 나라의 고대국가 유적과 유물들이 대부분 등재되고 있으므로 유네스코의 대표적인 업무라고 생각합니다.

 

 

(익산세계유산3) 백제 역사유적지구에 등재된 8곳 지도와 안내판▼ⓒ유연길

 

익산의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백제의 고도 중 백제의 한성 시대를 제외하고 공주 부여 익산의 8곳이 백제 역사 유적지구에 등재됐습니다. 백제 마지막 수도였던 익산 2곳을 포함하여 웅진 시대 공주의 공산성, 무령왕릉과 왕릉 원 등 2, 사비 시대인 부여의 4곳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나성, 정림사지, 왕릉 원 등입니다. 이 문화유산들은 우리나라 고대국가 중에서도 가장 화려했던 백제 문화유산이기에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익산의 2곳의 세계문화유산은 특히 백제 700년 역사 중 제일 늦은 백제 후기 유적이고 백제의 마지막 수도이었기에 더욱더 빛나고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익산세계유산4) 익산 쌍릉 대왕묘▼ⓒ유연길

 

특히 익산의 쌍릉은 세계문화유산 지정 당시 무왕 능이라는 증거가 부족했으나 그 후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무왕 능으로 판정 나 차후 추가로 쌍릉까지 등재가 되리라 기대되는데요. 익산은 이들 세계 문화유산 등재로 국립익산박물관 승격을 이뤄내기도 했습니다. 익산의 세계문화유산인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을 소개하겠습니다.

 

 

(익산세계유산5) 미륵사지 입구에서 바라본 미륵사지와 미륵사지 서탑▼ⓒ유연길

 

미륵사지와 미륵사

 

 

(익산세계유산6, 6-1) 미륵사지 서탑을 돌아보는 관광객들▼ⓒ유연길

 

미륵사지는 고대 동아시아 최대 사찰 터 중 한 곳으로 사적 제150호이고요. 이 미륵사지에 고고하게 우뚝 서 있는 미륵사지석탑은 국보 제11호로서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항상 등장하여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미륵사지석탑에서 대한민국이 깜짝 놀랄만한 역사적인 유물이 나왔는데요. 바로 사리장엄구입니다. 역사학자들이 예상했던 대로 엄청난 유물이 미륵사지석탑에서 나왔습니다.

 

 

(익산세계유산7) 미륵사지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의 내 호와 외로▼ⓒ유연길

 

지난 2009년 미륵사지 서탑 해체 보수 정비사업 과정에서 석탑 한가운데 있는 심주석 아래에서 발견된 백제의 타임캡슐인 사리장엄구입니다. 사리장엄구에서 함께 출토된 유물인 금동 사리 외 호 1점과 금동 사리 내 호 1, 639년 절대 연도를 기록한 사리봉영기 1,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았던 청동합 6점까지 총 9점이 함께 국보로 지정된 것입니다. 미륵사지 사리장엄구는 국보 중의 국보이고 찬란한 백제 역사문화의 정수입니다.

 

 

(익산세계유산8) 미륵사지석탑에서 발견된 사리봉영기▼ⓒ유연길

 

또한, 1400년이 지난 후에 이 세상에 나와 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사리장엄구의 사리봉영기에서 백제 후기 역사를 기록한 확실한 역사적인 증거가 나왔는데요. 얇은 금판으로 된 금제 사리봉영기에는 앞면과 뒷면에 각각 11줄 총 193자를 새겨져 있었으며, 좌평 사택덕적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시주해 사찰을 창건하고 639년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바로 미륵사가 창건된 해는 639년이라는 절대 연도가 사리봉영기에 새겨진 것입니다.

 

 

(익산세계유산9) 미륵사지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의 내 호와 외로▼ⓒ유연길

 

이 사리장엄구는 지난 20221207일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보로 지정 고시되었으며, 지난 0201일 익산 국립익산박물관에서 국보지정서 전달식과 국보지정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유적이면 국보가 되었을까요? 이는 익산의 자랑이고 대한민국의 자랑입니다. 이 엄청난 백제 후기 역사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 미륵사지와 미륵사지석탑이 백제 역사 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익산세계유산10, 10-1) 미륵사지의 연못과 미륵사지석탑, 미륵산▼ⓒ유연길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도 미륵사 창건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요. 서동이 왕이 되어 선화공주와 함께 사자사에 가는 길에 용화산 아래 큰 연못가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났는데요. 이에 부인이 이곳에 큰 절을 세우면 좋겠다 하여 미륵사가 창건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지금의 미륵산이 옛날에는 용화산이라고 했으며, 사자사도 미륵산 중턱에 있습니다. 무왕이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사실은 국보로 지정된 사리봉영기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익산세계유산11) 가까이서 본 미륵사지석탑 전경▼ⓒ유연길

 

사리봉영기로 인해 제일 곤혹스러운 백제 후기 역사는 선화공주 이야기이고 이로 인해 서동 설화와 서동요도 곤혹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미륵사 창건 요청은 선화공주이고, 사리봉영기에는 무왕의 왕후가 사택적덕의 딸이라고 새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왕후가 2명 이상이었다는 설과 선화공주 사후 왕후가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설과 통일신라 정통성 확립을 위한 이야기, 그리고 쌍릉 발굴에서 나온 20~40대 여성의 치아와 신라 토기가 나온 점 등등 설왕설래하고 있는데요 머지않아 백제 후기 역사가 확실하게 정립되리라 생각됩니다.

 

 

(익산세계유산12, 12-1) 미륵사지에서 열리는 명사와의 토크쇼 모습▼ⓒ유연길

 

미륵사지에서는 매주 주말이면 문화재청 협찬 박물관을 품은 미륵사지 등 각종 공연과 행사가 열리는데요. 때마침 미륵사지에서의 담소 익산에 일곱 개 뜬 별들이란 명사와의 토크쇼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미륵사지가 온통 토크 콘서트 관람객과 관광객들로 꼭 들어차 미륵사지의 유명세를 실감하였습니다.

 

 

(익산세계유산13) 미륵사지의 서탑과 동탑▼ⓒ유연길

 

미륵사지석탑과 동탑 그리고 중앙 목탑

 

 

(익산세계유산14) 국보제 11호인 미륵사지석탑과 보물 제236호 당간지주▼ⓒ유연길

 

639년에 창건된 미륵사는 지금은 미륵사지 서탑과 당간 주자만 덩그러니 남아있으며 빈 절터만 남아있습니다. 미륵사지 서탑은 일제가 콘크리트로 덮어 흉물이 되어있었는데요. 1999년부터 해체와 보수 복원과정을 거쳐 201920년 만에 복원을 마치고 일반에게 공개했습니다. 미륵사는 3 3금당으로 되어있는데요. 3 탑 중 하나인 미륵사지 서탑이 국보가 되어 미륵사지를 지키고 있습니다. 미륵사지석탑은 현재 서탑과 동탑이 있으며, 서탑은 국보 제11호입니다.

 

 

(익산세계유산15) 2년 만에 복원 완료한 미륵사지 동탑▼ⓒ유연길

 

미륵사지에는 동탑은 소실되고 기단부만 남아있었으며 서탑만이 홀로 있었습니다. 동탑을 다시 복원했는데요. 보기에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역사적인 사실에 의한 고증은 뒷전으로 미루고 시간에 쫓겨 2년 만인 1993년에 새로 만든 탑입니다. 그래서 20세기 한국 문화재 복원 최악의 사례로 기록될 거라고 하는데요. 원래의 형태와는 거리가 있는 탑이 되었습니다. 당장 망치로 때려 부수고 싶다고 공식적으로 말한 문화재를 사랑하는 관계자도 있을 정도로 고대 백제 후기 역사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는 익산의 고민이고 문화재청의 고민거리입니다.

 

 

(익산세계유산16) 발굴조사 중인 목탑지▼ⓒ유연길

 

3 탑 중 가운데 중 탑은 목탑이었다고 역사는 말하고 있는데요. 탑의 흔적도 전혀 없어서 3 탑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무색한데요. 최근 문화재청의 백제왕도 핵심유적 발굴조사 현장이라는 이름으로 가림막으로 막아 놓고 발굴조사하고 있습니다. 익산과 미륵사지는 백제 역사문화의 보물창고이기에 목탑 지에서 중요한 유적과 유물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익산세계유산17) 미륵사지 위쪽에서 바라본 미륵사지석탑 서탑과 동탑▼ⓒ유연길

 

미륵사의 규모는 가람의 배치와 면적에서 거대한데요. 백제 시대 다른 절의 1 1금당과는 달리 오직 미륵사지만이 유일하게 3 3금당으로 사찰을 지었습니다. 이는 연못에서 나타난 미륵삼존의 창건설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익산세계유산18, 18-1) 금당에서 본 돌 유적들▼ⓒ유연길

 

3 탑 뒤로는 3금당의 터와 둘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고 강당과 승방 지가 있는데요. 회랑과 복도까지 있는 규모가 큰 면적임에도 석축이 잘 남아있습니다. 이 외에도 서쪽 승방 지에서 발견된 공방지의 유적은 왕궁리 유적에서도 발견된 유적이라고 합니다.

 

 

(익산세계유산19) 후원에서 내려다본 왕궁의 전경▼ⓒ유연길

 

왕궁리유적과 왕궁리 오층석탑

 

 

(익산세계유산20) 왕궁리 유적지▼ⓒ유연길

 

왕궁리유적은 미륵사지석탑 덕분에 잘 알려진 유적지인데요. 익산의 유적지 중에서 늘 여행자들로 붐비는 곳입니다. 왕궁리 유적지는 사적 제408호로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2024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된 백제왕궁입니다. 지명도 왕궁을 뜻하는 왕궁면 왕궁리인데요.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지은 지명이라고 하는데요. 일본인도 왕궁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익산세계유산21) 왕궁리유적과 오층석탑▼ⓒ유연길

 

세계문화유산에 동반 등재된 미륵사지와는 5.7km로 산책과 운동 삼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예로부터 왕궁평, 왕금성 등으로 불리었고요. 넓은 공터에 왕궁리 오층석탑만 우두거니 서 있어 범상치 않은 곳으로 궁금했던 곳이었습니다. 유적지에는 수풀이 우거진 상태로 방치되며 오층석탑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1965년 왕궁리 오층석탑 해체와 복원이 진행했습니다

 

 

(익산세계유산22, 22-1) 왕궁리 오층석탑과 국보 지정된 유물들▼ⓒ유연길

 

해체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와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는데요. 주춧돌 사리공에서 금동불상 등이 나왔고, 1층 지붕 돌구멍에서는 금동 사리함이 나왔으며, 사리함 안에서는 금으로 만든 사리내함이 들어있었습니다. 또한, 서쪽 사리내함에서는 금강경을 새겨넣은 19장의 금속판인 금강 경판이 나왔고요. 동쪽 사리함에서는 녹색 유리로 된 사리병이 나왔습니다.

 

 

(익산세계유산23) 정원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왕궁리 오층석탑▼ⓒ유연길

 

이 유물들이 국보 제123호로 일괄지정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왕궁리 오층석탑이 국보로 승격되었습니다. 이로써 왕궁리 유적이 아주 중요한 곳으로 판정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발굴조사 결과 백제 시대 궁궐로 판명되었으며, 무왕이 사비성에서 왕궁리로 천도하고자 왕궁을 조성한 백제 사비 시대 두 번째 수도로 결론이 난 상태입니다. 지금도 계속 발굴조사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익산세계유산24) 왕궁리 유적지의 전경▼ⓒ유연길

 

왕궁리유적이 한때 1 1금당의 사찰로 바뀌었다가 폐사되고 지금은 국보 제289호인 왕궁리 오층석탑만이 외롭게 왕궁을 지키고 있는데요. 그러나 지금은 외롭지 않습니다. 백제왕궁의 모습이 여기저기 갖추어가며 친구가 되고 있으니까요.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 일체도 국보 제123호로 지정됐습니다.

 

 

(익산세계유산25) 왕실 사원이었던 제석사지 전경▼ⓒ유연길

 

백제 무왕이 수도를 왕궁으로 옮기려고 지은 왕실 사원인 제석 사지가 왕궁에서 직선거리로 2km 거리에는 있는데요. 일본의 관세음 응험기에는 백제 무왕이 익산으로 천도를 하고 제석사 사찰을 세웠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제석 사지는 백제 시대 사찰 터 유적으로 사적 제405호입니다.

 

 

(익산세계유산26, 26-1) 왕궁박물관 전경과 박물관 내부 1▼ⓒ유연길

 

익산에는 사적도 많고 국보도 4점이나 있으며 보물도 9점이나 있습니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이고 마지막 왕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궁리 유적지에는 유적전시관을 세워 제석 사지와 주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였는데요. 국립익산박물관으로 이관한 후 유적전시관을 1년 동안 증축하고 고치어 22525일 백제왕궁박물관으로 다시 개관하였습니다. 기존 박물관의 고정관념을 넘어서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개념의 박물관으로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익산세계유산27) 왕궁리 오층석탑과 관광객들▼ⓒ유연길

 

여러 차례 발굴조사를 거치면서 왕궁리 유적의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2001년부터 시작됐는데요. 사비 시대 공방 터가 발견되었고요. 그 후 금 조각들과 금 도가니, 금실, 유리 조각과 유리 도가니, 은 조각, 청자 파편 등이 대량으로 출토되었습니다.

 

 

(익산세계유산28) 왕궁의 수로와 수리시설과 칩거 시설▼ⓒ유연길

 

동서 석축 주변에서는 백제 시대 정원유적이 완벽한 상태로 발견되어 이곳이 백제왕궁유적으로 굳어졌는데요. 물이 나가고 들어오는 곳과 수로시설 집거 시설 등과 정자 등을 짓는 터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왕궁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도 확인되었는데요. 백제 시대의 완전한 정원유적이 발견된 것은 왕궁리유적이 최초라고 합니다.

 

 

(익산세계유산29, 29-1) 화장실 유적지와 유적안내판▼ⓒ유연길

 

2013년도에는 과학적이고 규모가 상당히 큰 화장실 유적이 발견되었는데요. 저류식 화장실과 수세식 화장실을 섞은 독특한 화장실 유적이었습니다. 이후 변기형의 토기 2점도 같은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왕궁 화장실 유적입니다.

 

 

(익산세계유산30) 후원 중심부에 있는 건물터▼ⓒ유연길

 

정원 뒤편 구릉 지대에서는 국내 고대 궁성 유적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후원 유적도 모습을 드러냈고요. 다수의 도수 시설과 환 수구도 발견되었으며 후원 중심부에는 건물터가 발견되었습니다.

 

 

(익산세계유산31)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왕궁리 표지석▼ⓒ유연길

 

유적 정비 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2015년에 그동안의 발굴 조사된 유적과 유물을 토대로 미륵사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 역사 유적지구에 등재가 되었습니다. 이후 발굴조사는 계속 진행하면서 왕궁 전체와 정원, 후원까지 모두 일반인에게 공개하였습니다.

 

 

(익산세계유산32, 32-1) 연못에서 본 미륵사지석탑과 정원에서 본 왕궁리 오층석탑▼ⓒ유연길

 

백제 역사 유적지구에 공주와 부여 익산의 유적이 등재되면서 문화재청이 지정한 우리나라 4대 고도(익산. 공주. 부여. 경주)가 모두 세계문화유산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백제 시대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고도여행을 추천합니다. 올해는 백제 마지막 수도이고 마지막 왕도인 익산으로 떠나는 익산 백제 역사여행 어떠한가요? 익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