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과 산행/◈익산시블로그기자단

(익산 가볼만한곳)현대시조의 메카 익산 가람 문학관을 찾아서

와이투케이 2021. 10. 27. 20:48

 

현대시조의 메카 익산

가람 문학관을 찾아서

 

 

 

 

전북 익산은 현대시조의 아버지이며, 우리말과 얼을 지킨 국문학의 선구자인 가람 이병기 시조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전국에서도 현대시조의 메카로 잘 알려진 고장입니다.

 

 

 

 

익산에는 선생의 혼과 작품세계를 볼 수 있는 가람 문학관과 선생의 생가가 있으며 호남고속도로 여산휴게소(하향)에는 난초시비와 고향으로 돌아가자시비가 있고 가람 동산이란 가람 이병기 테마공원이 있으며 익산 여산고등학교 교정엔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들은 익산여행에서 꼭 들려가야 하는 필수 여행코스인데요. 이곳 중에서도 특히 문학을 사랑하는 문학인들과 문학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바로 이병기 선생의 가람 문학관과 생가입니다. 익산이 배출한 우리나라 최고의 국문학자 가람 선생은 우리 고장 익산의 자랑이요. 대한민국의 자랑입니다. 선생은 시조 시인이면서 우리 민족의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국문학자이고, 한글 운동가이고 독립운동가이었습니다.

 

 

 

 

가람 이병기 선생(1891-1968)은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태생인데요. 그의 대표작인 난초” “등으로 잘 알려진 시조 시인으로서 근현대 시조와 국문학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근대문학의 선구자로서 현대적 시풍을 확립한 업적을 높이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병기 선생이 역사적 인물로 인정받는 이유는 우리 말과 얼을 지켰음은 물론이고, 국문학 연구와 시조를 중흥시켜 현대인들에게까지 국문학의 참된 이정표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가람의 발자취와 혼을 느낄 수 있는 익산 가람 문학관

 

 

 

 

익산 가람 문학관은 선생의 생가 바로 옆에 있는데요. 한국 근현대 시조와 국문학을 대표하는 가람 선생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선생의 문학작품과 자료들도 전시하고 연구 교육하는 문학관으로 201710월 개관하였습니다.

 

 

 

 

가람 문학관은 연 면적 996(301)1층 규모로 이병기 선생의 후손과 제자들에게 기증받은 고서와 훈장, 생활용품 등 총 23109점이 모두 전시하고 있습니다. 문학관 입구 안내데스크에서 발열 체크와 인적사항을 기재한 후 문학관 관람에 나섭니다.

 

 

 

 

 

가람의 발자취를 느끼고 그의 정신과 업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 가람 문학관인데요. 근대 시조의 아버지 또는 거장으로 불릴 만큼 문학적 가치가 높은 선생의 난초, , 냉이꽃, 별 등 다양한 시조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전시실은 가람 선생의 삶을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가람과 마주하기 영상실과 술과 제자 난초를 사랑한 삼복지인(三福之人)은 가람의 훈훈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고요. 가람 시조를 시청각 미디어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가람 시조 음미하기, 시대의 격변 속에서 우리 것을 찾고 지키고 가람의 삶을 느낄 수 있는 가람 생애 되짚기, 가람 선생이 작사한 교가를 들을 수 있는 가람 기억 가져가기 그리고 세미나실, 문인실, 휴게실, 수장고 등으로 구분되어있습니다. 가람 선생을 생각하면서 문학관 한 바퀴 돌면 가람의 문학세계와 그의 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전문학을 지키기 위해 1913년 교편을 잡은 가람 선생은 작품이 4,345권이 넘는다고 하는데요. 이들 작품은 서울대학교에 기증되었다가 현재는 가람 문고로 보존되어 한국학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가람 문학관 한편에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것처럼 그의 옛날 그 시절 교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칠판도 책상도 모든 것이 그가 사용했던 것처럼 옛것다움이 물씬 풍깁니다. 교실 옛 의자에 앉아 있노라면 가람 선생의 수업을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가람 선생은 19세인 1909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된 시간을 빼고는 병중에서도 일기를 쓰셨고, 58년간 쓰셨다고 하는데요. 그중에서 가람 일기 9선을 문학관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료로 가치가 높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또한, 초등 국어 교본을 만들고 지켜낸 가람 선생은 일제강점에 대한민국의 글과 혼을 지켜내야 한다는 문학인으로서의 가람 선생의 고집스러움을 문학관에서 엿볼 수가 있습니다.

 

 

 

 

가람 문학관에서는 이병기 선생의 시문학, 수필과 국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여 편의 시조론을 발표한 가람 선생은 특히 난초와 화초를 벗 삼아 고전문학에 집착했다고 전해집니다.

 

 

 

 

문학관에서는 가람 선생의 시조도 경험할 수 있고 시조를 따라 써보고 시를 읊조려 보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며. 그리고 각종 크고 작은 학술대회가 열리는 곳이 가람 문학관입니다.

 

 

 

 

 

 

문학관 앞 생가로 가는 마당에는 가람 이병기 선생의 독서 하는 동상이 있는데요.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겐 큰 감동과 울림을 주는듯합니다.

 

 

 

 

가람 시조 문학제와 가람 문학상

 

 

 

 

문학계는 한국 문학사에 기념비적인 공로를 세운 가람 이병기 선생의 난초 같은 고결한 문학 정신을 계승하고 가람 선생을 위대한 스승으로 삼고 가람이 겪어온 삶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매년 가람시조문학상과 가람 문학제를 열고 가람 시조 문학상을 시상하고 있습니다.

 

 

 

 

가람 시조 문학제는 2009년부터 열리어 올해가 13회째이고, 가람시조문학상 시상은 올해가 41회째를 맞는다고 하는데요. 13회 가람 시조 문학제와 제41회 가람 시조 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1106() 가람 문학관과 가람 이병기 생가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사진 출처:익산시)

 

 

 

 

가람시조문학상은 현대시조의 기틀을 닦은 가람 이병기 선생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자 마련된 문학상인데요. 국내 문학상 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인정받는 문학상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우수시인을 발굴하여 시상한 바 있습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문학작품 세계와 그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 역량 있는 시조 시인을 발굴하기 위해 매년 가람시조문학상과 문학 신인상을 공모하고 있는데요. 1979년 시조 문학사에서 제정해 2000년부터는 익산시에서 시상하고 있습니다.

 

 

 

 

41회 가람시조문학상에는 몇 해 전에 가람 선생님 묘소에서 좋은 시조, 사랑받는 시조로 시조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시조 시인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던 경남시조시인협회장 임성구 시인이 그의 작품 논 거울로 선정됐고요. (사진 출처:익산시)

 

 

 

 

가람 시조 문학 신인상은 익산 출신으로 현대시조의 중흥을 이룩한 정진희 시조 시인의 왕궁리에서 쓰는 편지가 선정되었습니다. 정진희 시인은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조집 왕궁리에서 쓰는 편지와 시집 새벽강에 얼굴을 씻고 등이 있습니다. (사진 출처:익산시)

 

 

 

 

올해 가람 문학상 수상자는 이미 선정되었고 시상식만 남겨두고 있는데요. 가람시조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0만 원과 상패, 가람 시조 문학 신인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1000만 원과 상패가 각각 수여된다고 합니다.

 

 

 

 

가람시조문학상 이전, 옛날 50여 년 전 우리 학창시절에는 가람 백일장대회가 있었는데요. 그 당시 문학소년 문학소녀들에게는 꿈의 무대나 다름없었던 참여하고 싶었던 대회이었습니다. (사진 출처:익산시)

 

 

 

 

가람 이병기 선생과 소박한 품성을 엿볼 수 있는 가람 생가

 

 

 

 

이병기 선생은 16세까지는 익산에서 한학을 공부한 후 20세에 서울 관립 한성사범학교 재학 중 조선어 강습원에서 주시경 선생으로부터 조선어 문법을 배웠습니다.

 

 

 

 

주시경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우리 말과 얼을 지키기 위해 힘썼던 이병기 선생은 1942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이후 마치 그의 시처럼 고향인 익산으로 돌아온 뒤에는 전북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 힘써왔습니다.

 

 

 

 

슬기를 감추고 겉으로 어리석은 체한다는 뜻을 간직한 수우재(守愚齋)'”라는 사랑채 이름에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평생을 지조 있는 선비로 살아온 그의 풍취가 은은하게 느껴집니다.

 

 

 

 

가람 선생의 고향에 있는 고풍스러운 초가집 생가는 소박한 일생을 학문으로 살다간 선비의 체취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선생의 생가는 19736월에 지방기념물 제6호로 지정됐으며, 초가지붕을 얹은 목조 가옥과 소박한 정자, 화려하지 않은 연못 등 소박하면서 검약한 가람 이병기 선생의 품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연못을 지나면 4칸짜리 사랑채와 그 옆에는 1906년에 세운 승운정(勝雲亭)이라는 모정이 서 있는데요. 행서로 쓰인 승운정 편액과 동우가 쓴 승운 정기가 걸려있습니다. 승운정은 친구가 구름처럼 몰려온다는 뜻인데요. 빛바랜 툇마루가 오랜 시간을 견뎌온 인고의 시간을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승운정 옆에는 2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수형과 수세가 좋은 탱자나무가 잘 익은 노란 탱자를 자랑하고 있는데요. 전라북도 기념물 112호로 지정되어있는 귀한 탱자나무입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는 생가 뒤로 펼쳐진 대나무밭과 그 옆으로 오뚝하게 솟아있는 용화산, 그리고 동남쪽으로 보이는 문필봉이 한 폭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루어 자연스러움을 자아내는 선비 가옥의 기품을 한껏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오는 1106()에 열리는 제13회 가람 시조 문학제와 제41회 가람 시조 문학상 시상식이 기다려집니다. 전국의 문학인들의 큰 성원과 사랑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