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삼례의 비비정 예술열차
비비낙안
가러기 날고 기러기 쉬어간다는 비비낙안과 전주8경인 비비정
완주의 대표관광지 이다
이 예술열차 건너편으로 가면 학생들이 공부하기 좋은 호남대로 옛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는 공원이 있다
전주 화정지구 기러기 나루이다
철새들을 조망할 수있는 조망대가 설치되어있다
와이투케이가 만경경을 따라 남쪽 제방으로 북쪽 제방으로 왕복 완주하면서 들려보았다
호남대로옛길
옛길은 이야기속으로 사라진 길이다
한때 민족 이동의 대동맥이었던 호남대로는 이제 역사로만 기억되는 잊혀진 길이다
하지만 옛길은 우리 역사와 문화를 오롯이 간직한 보고이다
길을 다니던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옛길의 생명력은 또한 끈질기다
국토의 개발이라는 거대한 밀물에 사라지기도 했지만 아직도 원형이 보존된 곳이 적지 않다
개발에서 소외된 호남지역은 그런 의미에서 옛길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는 지역일 수 있다
원(院)과 주막(酒幕), 객주(客主)는 사라지고 없지만 기쁨 슬픔 절망 한의 역사를 간직한 옛길의 흔적을 좇을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 전주의 뒤안길이 된 옛길
전북 지방의 옛길은 전북의 도청 소재지인 전주시의 서쪽 변두리를 지난다
호남대로란 옛말이 무색할 정도다
나지막한 구릉지대를 지나는 옛길은 한적한 2차선 도로로 변했다
옛날 원이 있었다 해 붙여진 전주시 원동을 지난 옛길은 전주∼군산간 국도 26호선과 교차한다
국도 26호선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길이다
봄이면 전국에서 가장 긴 일백리 벚꽃터널을 이룬다
벚나무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재일교포들이 전해준 것이다
일제가 수탈을 위해 만든 길에 재일교포들이 일본의 나라꽃을 심은 길은 이제 전주와 익산, 군산을 연결하는 산업도로로 변했다
옛길이 국도 26호선과 교차하기 직전 오른쪽에는 전주 수목원(옛 한국도로공사 수목원)이 자리잡고 있다
1970년 호남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남은 땅에 다양한 수목과 희귀식물을 심어 꾸민 수목원이다.33만 9380㎡의 부지에 178과 3010종의 수목을 재배하고 있다.
인터체인지 부근은 일제 시대에 미쓰비시 재벌이 운영하던 동산농장을 비롯한 일본인들의 대규모 농장이 있었던 곳이다.
전라선 철도도 동산농장에서 생산되는 쌀을 반출하기 위해 부설된 사설 협궤 철도였다
그러나 동산농장이 있던 곳에는 전주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섰다
옛길은 용덕·용정·구정마을을 지나면서 호남고속도로와 교차해 완주군 삼례읍을 향한다
호남고속도로를 왼편에 끼고 삼례까지 펼쳐지는 평야지대를 나란히 달린다.
옛길은 아련한 모습으로 논밭 사이를 지나다 만경강 상류인 삼례 한내 천변에서 끊겼다
강을 건너던 다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내를 건너면 완산팔경(完山八景)의 하나인 비비정(飛飛亭)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비비정은 1573년(조선 선조 6년) 무관이었던 최영길에 의해 건립됐다
이곳에 오르면 전주시내와 호남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앞으로는 한내가 흐르고 주변으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풍광이 대단히 아름답다
유유히 흐르는 물위로 기러기들이 내려앉는 풍경을 볼 수 있어 옛 조상들은 이곳을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 했다
양반들은 이 정자에 앉아 술을 마시고 시를 지어 주고 받으며 정취를 달랬다고 한다
깊고 천이 넓어 군산 부안에서 온 소금배와 젓거리배가 쉴새 없이 오르내렸다
백사장 한쪽에는 큰 시장이 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은 조선시대 9대로 가운데 전주 남원 통영 방면으로 가는 6대로가 분기하는 곳이다
호남대로는 비비정 옆 언덕을 지난다
● 동학농민군 2차 집결지 삼례
비비정 마을을 지난 옛길은 삼례읍 중심지에 들어선다
삼례초등학교 앞을 지나 원삼례마을을 향하면서 헤어졌던 국도 1호선과 다시 교차한다
국도 1호선은 익산쪽을 향하지만 옛길은 호남고속도로와 나란히 삼례중앙초등학교 옆을 지난다
삼례는 동학농민혁명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1894년 9월(음력) 10만여 농민군이 항일 투쟁의 깃발을 앞세우고 재집결한 2차 봉기 장소이다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범하고 청일전쟁을 일으키자 일본군과 탐관오리를 아내기로 결의한 농민군들은 삼례뜰에서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다
삼례봉기는 근대 민족·민중운동의 출발이요 새로운 한국사회를 밝히는 위대한 횃불이었다
이에 앞서 1892년 11월(음력)에는 동학교도 수천명이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탄원하기 위해 모인 장소다
이른바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이다
삼례집회는 전라감영의 무력진압을 각오한 것으로 실은 탐관오리에 대한 투쟁이었다
이들은 삼례역에 모여 두차례 전라감영에 의송(議送)을 보내 동학 교조의 신원(伸寃)을 할 것과 동학도에 대한 수탈 중지를 요구했다
삼례집회는 본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동학도에 대한 부당 주구금지 조치를 얻어냈다
● 백제 왕도 익산
호남고속도로 삼례인터체인지를 지나면 행정구역이 변한다
옛길 남쪽은 완주군 삼례읍 북쪽은 익산시 왕궁면이다
왕궁은 백제문화제가 널리 분포되고 있는 지역이다
보물제289호 왕궁리오층석탑,제석사지(사적 제405호),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 함벽정(전북도 유형문화제 제127호) 등이 있다
왕궁리 유적은 1989년부터 학술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왕궁리 유적에서는 백제왕궁임을 증명하는 문화재들이 많이 발굴 조사되었다
왕궁리 유적지에는 백제계 석탑 형식에 신라탑 형식이 가미된 고려 초 작품으로 추정되는 5층 석탑(국보 제289호)이 남아있다
옛길은 왕궁면 남촌마을과 삼례읍 농원마을 사이를 지나 봉광동을 스친다
통정·역기·신기마을을 지날 때까지 왼쪽으로는 호남고속도로가 계속해 달린다
전광리에서 호남고속도와 교차한 옛길은 왕궁저수지를 향한다
왕궁저수지는 1931년 일제시대에 준공됐다
옛길은 왕궁저수지 건설로 일정 부분이 수몰됐다
대동여지도에 옛길은 왕궁저수지 중앙을 통과하는 것으로 기록돼있다.
저수지를 지나 연봉정 마을을 지난 옛길은 탄현고개를 넘는다
연봉정 마을은 주막촌이었으나 현재는 초라한 농촌 마을에 지나지 않는다
탄현고개를 넘으면 익산시 여산면이다
이곳부터 옛길은 국도 1호선과 다시 한몸이 된다
● 천주교 성지 여산
여산은 한양에서 내려올 때 호남의 초입 고을로 위세를 떨쳤던 지역이다
호남에 들어가기 전 중요한 길목이어서 주막과 객주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는 장급 여관 하나 볼 수 없는 전형적인 농촌 면소재지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이루는 여산은 한때 학문과 행정의 중심지였다
천주교의 전래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빨랐다
그만큼 박해도 많이 받았다
여산성당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여산부의 속읍지였던 금산·진산·고산 등지의 심산유곡에 숨어있던 신자들이 여산관아로 잡혀와 모진 형별과 굶주림의 고통을 당하고 1868년 처형돼 순교한 성지다
이곳에는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철거된 동헌이 남아 있다
동헌은 사또가 있었던 관아다
여산동헌(전북도 유형문화재 제93호)은 조선 후기 관아 건물 가운데 원형에 가깝게 잘 보존된 몇 안되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동헌 앞에는 천주교 신자들의 얼굴에 물을 뿜고 그 위에 백지를 여러 붙여 질식사시킨 '백지사(白紙死)터 성지'가 남아 있다
옛길은 여산 동헌을 지난 뒤 1번 국도와 다시 만나 충청남도 논산시를 향한다
■신정일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대표 옛길 복원해 보행권 되찾아야
역사 속에서 실재했던 옛길을 복원해 국민들의 보행권을 확보해야 합니다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53) 대표는 옛길을 복원해 보행권이 확보되면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은 물론 우리 국토의 재발견과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땅 걷기 모임은 차를 타는 것 보다 느리게 걸으며 우리 국토를 다시 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발족했다.'보행권 되찾기 운동'과 '옛길 문화재 지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두발로 우리 땅을 걷자는 뜻으로 11월11일을 '길의 날'로 정했다.
"우리 산, 우리 강, 우리 국토가 너무 아름다워 걷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답사하며 얻은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을 책으로 쓰고 있다.
'다시 쓰는 택리지'를 비롯해 그가 펴낸 책은 무려 32권이나 된다. 모두 그가 발로 뛰며 몸으로 느끼고 본 것을 엮은 것이다.
영남대로, 삼남대로는 물론 한강, 낙동강, 금강, 만경강 등 8개 강을 걸었고 400개의 산을 올랐다.25년 동안 전국을 답사하며 걸은 거리만 해도 지구를 몇바퀴 돌 정도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현대판 김정호'라는 별명이 따라 다닌다.
옛날 만경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주로 배를 탔지요
비비정이 완산팔경으로 꼽히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는 현재 왕궁리 근처에 가면 축산 폐수가 악취를 풍기지만 옛 백제의 숨결을 느끼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의미 깊은 곳"이라며 "호남대로는 걸으면 걸을수록 깊은 맛을 느낄수 있다."고 강조한다
옛 선비들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고 책을 읽는 것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답사를 하다 지치면 책을 읽거나 쓰고, 이 역시 지치면 다시 답사를 떠나지요.
그는 이처럼 요즘도 일주일에 3일은 답사를 위해 걷고 4일은 책을 쓴다
신 대표는 걷는 것은 곧 자연 사랑이고 자연 속으로 내가 들어가는 하나의 첩경"이라며 옛길 복원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출처 우리땅 걷기 서정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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