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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왕의 발자취를 따라서 미륵산 사자사(獅子寺 사자암)

와이투케이 2020. 2. 18. 23:40


백제 무왕의 발자취를 따라서

미륵산 사자사(獅子寺 사자암)



 

지구촌이 온통 신종 코로나19로 혼란스러운 올겨울.

백제왕도 익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익산이 전국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익산이 대한민국 핫 플레이스가 된 것이지요.

이유인즉 우리나라 13번째인 국립익산박물관이 개장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사적 제150호 미륵사지와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석탑 바로 옆에 개장하였습니다.



 

미륵사지와 미륵사지석탑 그리고 국립익산박물관의 중심에는 익산에서 태어난 백제 제30대 무왕이 있고요.

그리고 무왕이 세운 미륵사보다 더 앞서 창건한 미륵산 사자사(獅子寺)가 있습니다.

무왕은 왜 익산으로 천도를 했으며 무왕은 왜 미륵산 아래에 고대 삼국시대 최대의 사찰인 미륵사를 창건했을까요?



 

궁금한 마음을 가슴에 담고

1400년 전 백제 무왕이 사자사로 올랐던 그 발자취를 따라서

익산 미륵산 사자사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무왕과 사자사 지명 법사



 

무왕은 어린 시절 생가터에서 미륵산 사자사를 바라보며 성장하였고요.

왕이 되기 이전부터 백제의 고승 사자사의 지명 법사를 자주 찾아가 공부를 하였습니다.

나아가 지명 법사께서 신통력을 발휘하여 무왕과 선화공주가 결혼하게 되었고요.

그러니 어릴 적부터 미륵산 사자사를 수없이 오르내리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 무왕이 익산 금마의 용화산(미륵산의 옛 이름) 사자사에 있는 지명 법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는데요.

신라, 고구려와의 잦은 싸움으로 흉흉해진 민심도 달래고 백제 중흥을 논하기 위해 왕비인 선화공주와 함께 미륵산 사자사로 행차하던 중 미륵산 아래 연못에서 갑자기 출현한 미륵삼존불의 계시로 그 연못 위에 미륵사를 창건하였습니다,



 

무왕의 발자취를 따라



 

미륵사지에서 미륵산과 사자사를 올려다봅니다.

사자사가 있는 미륵산이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과 어찌 그리 똑같을까요?

과연 무왕은 어디로 저 사자사를 올라갔을까요?

추측으론 아마도 이 길이 무왕이 사자사로 오르던 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 등산로가 미륵사지에서 사자사까지 제일 가까운 거리이고 미륵산 1번 등산로이며 옛날부터 미륵산 등산코스 중 가장 오래된 등산로 이거든요.



 

사자사로 오르면서 미륵사지를 뒤돌아 바라봅니다.

항상 앞쪽에서만 바라보던 미륵사지가 뒤에서 바라보니 새삼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무왕을 그리며 사자사로 오르는 것이 1400년 전 시간여행이 되는군요.



 

무왕이 오르내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길을 따라 필자가 어릴 적 여름철에 엄마 따라서 물 맞으러 다녔던 냉정 약수터를 넘어 사자사에 오르기 시작합니다.

이 약수터는 조선 시대 1756(영조 32)에 간행된 금마지(金馬誌)에 의하면 단오날과 칠월 칠석 일에

이 물을 마시고 이 물을 맞으려고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하는데요.

아마 백제 무왕이 사자사로 오르던 그때에도 이곳에서 애마에게도 물을 먹이고 무왕도 시원한 약수 한 그릇 마시고 오르지 않았을 가 생각해 봅니다.



 

사자사로 오르는 길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숨이 꼴딱 넘어갈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 바윗길을 올라야 사자사에 이를 수 있고요.

오르는 길 중간엔 미륵사지를 정 후면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미륵사지 전경이 보입니다.

이곳에 미륵사지 전망대를 설치한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자사와 사자암



 

사자사는 미륵산 정상 동남쪽 아래 8부 능선쯤 해발 320m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유명한 사찰들이 그러하듯 사자사도 미륵산에서 경관이 최고로 아름다운 곳에 자리하고 있어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사자사에 도착합니다.

가파른 절벽 옆 집채만 한 큰 바위에 기대고 앉아있는 사자사가 왜 이리 아름답게 보입니까?

정말 아름답습니다.

사자사에서 무왕이 세운 미륵사지를 내려다 봅니다.

미륵사지 넘어 산모퉁이 옆의 서동 생가터도 보이는군요.

익산 천도를 증명하고 있는 왕궁리 유적지와 오층석탑 그리고 무왕의 무덤인 쌍릉까지 다 보입니다.

필자가 생각해보기로는 사자사나 미륵사지나 서동생가터나 모두가 천하의 명당 중 명당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자사가 있는 미륵산이 사자의 기()가 충만한 사자앙천(獅子仰天)이라 했듯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으나 풍수지리상으로 명당이고 명산이 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이유인즉 미륵산이 청와대 뒷산 북악산과 모양이나 산세 그리고 산의 높이까지도 비슷하기 때문이지요.

미륵사지에서 미륵산을 올려다보면 정말 북악산과 똑같이 생겼으며

사자사 위치 역시 북악산 동남쪽 8부 능선의 바위 2개가 있는 곳과 위치가 비슷함에서 이유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자사가 아니고 사자암으로 되어있군요.

맞습니다. 지금은 사자사 자리에 사자암이 있습니다.

사자암에서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이 큰 바위 밑에 있는 사자사지 표지판입니다.

표지석 바로 옆에는 연꽃보다 더 아름다운 약수터가 있고요.

옛 사자사의 모습은 온대간대 없이 찾을 수가 없으며 지금의 사자암이 사자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사자동천(獅子洞天)

사자사 터를 알리는 표지판 위의 거대한 바위를 올려다보면 사자동천이란 일필휘지의 한문이 보입니다.

사자동에서 제일 좋은 곳 즉 신선이 노닐 만큼 경치와 경관이 뛰어난 곳을 말합니다.

사자사가 있던 터가 그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지요.

이종림 작()으로 글씨가 새긴 지 100년 정도 되었다 합니다.



 

19931차와 2차 발굴조사에서 사자사라고 써진 명문 기와가 발견됨으로써 사자사 터 임이 확인되었고요.

건물터에서 통일신라 토기 및 백제 시대 기와가 함께 조사되어 지금까지 전하여온 사자사 터 임을 확증하게 되었습니다.

이곳 사자암이 백제 고찰 사자사 터임에는 틀림이 없고요.

사찰 경내의 아름드리 느티나무 5그루가 사자사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동행한 지인이 아름드리 느티나무 옆에서 포즈를 잡아봅니다

사자사의 느티나무가 얼마가 큰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확인이 되는군요



 

사자암은 김제 금산사의 말사로 2000331일 시도기념물 제10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150(348)의 사자암은 몇 차례 중건과 신축을 거쳐 초기의 옛 모습과 달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과 기도처인 삼성각 그리고 스님들의 처소인 요사채, 창고 등이 있으며 대웅전 앞에 석탑 2기와 석등2기가 있습니다.

스님은 누가 법당을 기웃거리든 말든 목탁을 두드리며 오로지 경을 욀 뿐입니다.




 

사자암은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전 동학 제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이 잠입해 기거했던 곳이며 김개남과 김덕명이 해월을 만나러 왔던 곳입니다.

왕년 승려 시인인 사자암의 주지 향봉 스님은 인도에서 숱한 역경을 이겨내었으며, 티베트와 네팔, 중국 등지에서 15년이나 구법을 위해 노력한 분이십니다.

내장산 내장사의 주지 등을 역임하셨으며 조계종의 중앙부처에서도 활동한 바가 있다 합니다.



 

왜 사자사라고 했을까요?

사자는 불교와 인연이 깊은 동물입니다.

고승이 법문을 설할 때 사자후(獅子吼)를 토한다 하며 부처님의 자리를 사자좌(獅子座)라 하며 법당의 수미단에는 나무로 만든 사자상을 많이 볼 수 있고요.

불교에서 사자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그래서 사자사로 했을 것입니다




 

사자사를 내려오며... 



 

사자사를 돌아본 후 익산의 명산인 미륵산 정상까지 올라가 봅니다.

사자사가 있는 곳은 미륵산 에서 경사도가 제일 심한 곳입니다.

왜 이리 경사가 급한 곳에 사찰을 지었을까 궁금해집니다.

미륵산의 미륵부처가 바로 임하도록 정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절을 짓다 보니 그랬던 것으로 생각해봅니다.




 

사자사에서 바라본 한반도 지형의 서동공원 앞 금마저수지입니다

정상으로 가는 길목 여기저기에서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고요

내려다보는 지형과 각도에 따라 똑같은 한반도 지형이 되기도 하고 약간 다른 모습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작가 한반도 잡기에 여념이 없군요

폼도 좋고요




 

스님처소인 요사채를 지키고 있는 흰둥이와 누렁이는 주지 스님이 불경을 외울 땐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같이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는 영리한 개라고 합니다.

사자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는지 오직 자기 수양만 하고있는 흰둥이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눈도 마주치지 않는군요.

내려오는 길에서 사자암에 오르는 사람들이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볼 수 있었습니다.



 

사자사에서 내려오는 길 역시 경사가 매우 급하며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려 험악한 산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최근엔 예전에 오르기 쉽지 않은 길을 잘 정비하고 계단도 다시 만들어 놓아 신도들이 오르내리기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듯하고요.

아쉬움에 뒤를 돌아 다시 사자사를 올려다봅니다.



 

사자암이란 표지석이 주차장 옆 길가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이 사자사의 일주문 역할도 하는 듯하고요.

표지석 입구 오른쪽엔 사찰에서 필요한 여러 자재와 식자재 등을 실어 나르는 모노레일도 설치되어있었습니다.



 

사자사를 대신하여 사자암이 백제 때부터 지금까지 1,500년 넘게 유지되어 온 사실은 이곳이 영험한 도량이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자사는 선운사의 도솔암과 함께 귀신을 쫓는 곳으로 유명하다 합니다.

즉 무병을 치료하는데 영험한 도량이라 하지요.

그래서 유명한 고승이 수행하며 이곳에 오래 머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국립익산박물관을 출발하여 냉천 약수를 거쳐 정상을 찍고 사자암을 둘러본 후 전북 과학고등학교 후문과 교정을 지나 미륵사지로 내려오는 코스이었습니다.

이 길이 무왕이 사자사로 오르내리는 길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백제 무왕은 백제의 부흥과 삼국통일의 꿈을 키우기 위해 무왕이 나고 자란 익산 미륵산에 미륵사를 창건하고 익산으로 천도를 하였습니다.

익산으로의 천도와 백제 말기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익산 시민들에게 남겨준 분이 바로 백제 무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