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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왕의 왕궁이었다는 왕궁리5층석탑과 왕궁리 유적

와이투케이 2013. 12. 30. 09:49

 

국보289호인 익산 왕궁리 5층 석탑

 

지역명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왕궁면(王宮面) 왕궁리(王宮里) 이다
이곳에 예전 백제 시대의 왕궁이 있었다고 해서 왕궁리
"왕궁이 있는 곳 = 수도"의 공식으로 치자면 익산도 백제의 수도일게다
위례성(서울) → 웅진(공주) → 사비(부여)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익산 왕궁리 왕궁터가 백제 말기 무왕때 왕궁 이었다고 한다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때 조성된 왕궁유적으로 1989년부터 현재 까지 국립부여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국조사가 진행중이며 모든 역사학자들의 최대 관심사가 이곳 왕궁리 유적에 쏠리고 있는게 사실이다

백제 왕궁터는 우리나라 고대왕궁으로는 처음으로 왕궁의 외곽담장과 함께 왕이 정사를 돌보거나 의식을 행하던 정전건물지를 비롯한 14개의 백제건물지와 백제 최고의 정원유적 금 유리 동등을 생산하는 공방지 우리나라 최고의 위생시설인 대형 화장실유적등이 조사되어 왕궁의 축조과정과 왕궁에서의 생활내용등이 조사 되었다

왕궁의 축조과정은 처음부터 치밀한 계획과 체계적으로 건립된 사실이 확인되어 백제왕궁의 궁실제도의 일면을 살펴 볼수 있다

 

사찰유적은 본래는 왕궁터였던 곳을 후대에 사찰로 바뀌고 사찰에서 다시 오층석탑을 세우고 하는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변화가 생긴 모양이다

왕궁에서 사찰로 변화되는 정확한 계기는 알수 없지만 익산 쌍릉이 백재왕궁의 서쪽에 조성됨에 따라 의자왕이 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로 활용하기 위한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왕궁과 관련된 유적은 서울 풍납토성 공주공산성 부여의 관북리유적 익산왕궁리유적등지로 알려져있으나 익산 왕궁리유적을 제외하면 구체적인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탑은 실제로 보면 꽤나 크다
동양최대의 석탑인 백제 무왕때 세운 미륵사지석탑(국보11호)의 사촌동생뻘 정도 되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새삼, 저 석탑이 같은 자리에 1000년 넘게 서 있었다는게 신기하다
왕궁리 유적지에는 건물터만 있고, 남아 있는 유물은 석탑 밖에 없다
발굴과정에서 사리장업과 사리탑 금동불상등 많은 고려시대유물들이 발굴되었는데 이 유물들은 국보123호로 일괄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 이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여러번 들려본 왕궁리5층석탑이고 내고향의 국보인데도 처음으로 포스팅해 본다

5층석탑에 미안함 마음이다

앞으론 내고향소식 전하는데 주력을 해야 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따스했던 크리스마스날 오후

그동안 포스팅에서 제외되었던 내고행 보물들을 이리저리 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익산여행에서는 필수코스이자 모두가 국보이자 보물인 고도리석불과 왕궁리5층석탑 그리고 미륵사지석탑과 쌍릉까지 둘러 보았다

그리고 연속으로 포스팅하려 한다

모두가 금마면에 위치해 있는데 미륵산에만 열심히 다닐줄 알았지 이 들 보물들을 포스팅 하는걸 잊고 살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