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산(해발500m)은 하늘천(天), 병호(壺)를 써서 속이 텅빈 산이라는 뜻이다. 천호산의 서북쪽에 호남에서 유일한 길이가 약 800m에 이르는 천호동굴(天壺洞窟)을 간직하고 있다. 성치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성치마을 윗쪽, 냇가에 구멍이 있는데, 비가 많이 오면 그 구멍속으로 냇물이 빨려 들어간다고 한다. 결국, 그 텅빈 구멍으로 스며들어간 물은 석회를 녹여 큰 동굴을 형성하고 있는 중이며, 그래서 동굴이 있는 마을의 이름도 호산리(壺山里)이다.
이 산의 서북쪽 기슭에 하나밖에 없는 석회동굴인 천호동굴이 발견된 후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산으로 서남쪽 기슭에 백운사, 문수사, 천일사 등의 고찰이 있고 정상일대에 봄에는 철쭉이 볼 만하다.
여산에서 화산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의 마루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처음부터 계속 능선길로 이어진다
'완주군지'에 "비봉면 내월리 천호마을(41세대)은 天呼, 天壺, 용천내, 중뜸 등으로 부르며, 천호는 천호산 남쪽 기슭에 있고, 성주산 기슭에는 성주 산제당이 있고, 천호공동묘지에는 오선지(吳善智)의 천주교 순교비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비봉면 주민들은 옛적에 '천호산'을 '성주산'으로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여산면 주민들은, 이 산을 '성태봉'으로도 부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정상 북서쪽에 축성연대가 미상인 옛 성터(혹은 봉화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천호산은 고만고만한 봉우리 8개가 합쳐져 마치 8폭의 병풍을 연상시킨다.소백산맥에서 갈라져나온 노령산맥의 대둔산줄기가 서남쪽 호남평야로 잔가지를 치면서 충남과 전북의 경계지역에 작봉산 까치봉 옥녀봉 함박봉등이 올망졸망 이어지면서 그 끝자락에 천호산을 일구었다
예로부터 천호산은 예와 충의 고장인 연산을 만들어 냈다. 논산시 연산, 벌곡, 양촌, 두마면의 경계를 이루며 우뚝선 천호산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산세 그대로다. 그리 높지 않은 산높이가 그렇고 밋밋한 능선이 또한 그렇다
이 산은 우리민족이 간직한 온갖 사연들을 온몸으로 감싸고 있다. 계백장군과 화랑관창의 이야기로 회자되는 역사의 현장이 이곳이요, 태조 왕건이 마지막으로 후백제를 멸망하고 고려를 건국한 성지가 바로 이곳이다. 그런가 하면 3.1운동시에 수많은 연산인들이 만세를 부르다시피 피를 토했고, 북한의 빨찌산에 대항하다 순국한 연산면민들의 나라사랑 정신이 이산아래에 자랑스럽게 내려오고 있다.
천호동굴은 동굴 입구는 호산리 호월 마을의 북서쪽 450m 지점에 있다. 1965년에 발견되었고, 동굴의 보호를 위해 1970년에 폐쇄되어 관람할 수 없다.
주된 굴은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발달되어 있는데, 입구에서 50여m까지는 폭이 2-4m, 높이는 3-6m이다. 여기를 지나면 천장이 낮아지고 굴곡이 많아진다. 입구에서 250여m 지점에서는 수정궁이라 불리는 40 평방미터 정도의 소광장이 있는데, 이곳은 높이 12m, 폭 10m이다. 천장에는 아름다운 종유석과 석순, 석주 등이 있어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동굴의 총 길이는 677m에 이르며, 굴바닥에는 항상 많은 물이 입구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천호산(天壺山)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천호(天呼) 사적지는 그 이름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이 교우촌을 이루고 1백50년간을 '하느님을 부르며' 살아온 신앙의 터전이다.
천호 사적지는 호남 지역이 자랑하는 대표적 사적지로 박해의 모진 회오리가 불어닥치던 1866년 병인년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성 이명서(베드로), 성 손선지(베드로), 성 정문호(바르톨로메오), 성 한재권(요셉)와 같은 해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아우구스티노),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한 열 분의 무명 순교자들이 묻혀 있다. 그밖에도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한 많은 순교자들이 이곳 천호산에 종적을 감춘 채 묻혀 있다.
천호 마을은 박해 시대 때 '다리실(月谷)', '용추네'로 불리던 곳으로 교우촌이 형성되면서부터 후대로 와 행정명이 천호로 변했다.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39년경, 기해박해를 전후해 주로 충청도 지방의 신자들이 이곳 산골짜기로 숨어들어 와 신앙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도 천호산 깊은 골짜기에 남아 있는 한 평 남짓한 밭자리와 가을엔 도토리묵을 쑤어 먹는 식생활, 밤마다 같이 모여 두서너 시간씩 바치는 만과(저녁 기도)를 통해 옛 신자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천호 사적지 피정의 집에서 주관하는 주제별 피정은 무려 30여 명의 지도 신부를 모시고 연중 열리고 있어 잠시 세파를 떠나 고요함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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