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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듯 웅장한 "호남(湖南)" 예사롭지 않은 이름이여!

와이투케이 2011. 10. 2. 10:22

<1>호남(湖南)이 들어가는 전북의 4개 건축물

1.호남의 유래

 전라남,북도를 통틀어 가리키는 명칭으로 호남지방이란 말을 즐겨 쓴다  말 그대로 자면 호남은 호수의 남쪽이란 뜻으로 금강 이남 지역을 가리킨다. 세종실록에는 그 호수가 김제의 벽골제를 가리킨다고 적혀있고, 또 다른 문헌에는 금강을 옛날에는 호강이라고 불렀는데, 금강을 가리킨다고 적혀 있다.
 호남이란 명칭의 유래는 문헌상 세 갈래(금강, 벽골제, 황등호) 설이 있지만 현대사적인 측면에서 재조명해 볼 때, 호남의 3호(三湖, 즉 김제 벽골제, 정읍 눌제, 익산 황등제) 가운데의 하나인 익산의 황등호라고도 한다. 아무튼 호남은 원래 충청남도의 공주, 부여, 논산, 금산 지역 등 충청도 일부와 전라도 지방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영남은 대관령의 남쪽이라는 설과 문경새재 즉 조령의 남쪽이라는 설이 있다. 조령이라는 설이 압도적으로 많다. 예전부터 문경새재를 가리켜 영남의 관문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이르러 호남은 행정구역상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전라도라 칭하고 있는 것은 예로부터 호남지방의 중심도시 역할을 했던 전주와 나주에서 한 음절씩 따온 것이다. 고려조 현종 재위시 전라도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게 되었으며, 조선 말기에 전국을 13도로 개편을 하면서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2.호남이 들어가는 전북의 4개 건축물

 전북에는 유독 '호남 제일'이라는 현판이 많다. 호남제일루는 남원 광한루요, 호남제일의 정자는 정읍 피향정이요, 호남제일성은 풍남문이요, 호남평야의 첫 관문인 전주에 세워진 호남제일문도 있다.

호남제일성, 풍남문

 호남제일성인 전주부성은 언제 처음 쌓여졌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고려말 관찰사를 지낸 최유경이 개축했다는 기록이 있고 보면, 성의 수축은 그 이전일 것이다. 전주를 상징하고 있는 풍남문(보물 제308호)은 전동에 위치,  2층루의 남면에는 풍남문이란 편액이, 북쪽에는 호남제일성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원래는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남문으로 고려 공양왕 원년인 서기 1398년에 전라관찰사 최유경이 전주부성과 함께 창건했다고 한다. 이 전주의 남문은 조선 5백년의 역사 명맥을 잇는 수도 한성부의 상징적인 숭례문인 남대문과 같은 형태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호남제일루, 광한루

 남원시 광한루(보물 제281호)의 전,후면에는 호남제일루, 계관, 광한루란 현판이 걸려 있다. 호남제일루는 말 그대로 '호남의 제일 가는 누각'이라는 뜻이며, 광한루는 하늘나라 월궁의 궁전 이름이며,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 전면(측면)의 중앙칸 처마밑에는광한루라 쓴 현판이 걸려 있고 배면(북측)의 동측 측칸에는 호남제일루라 쓴 편액이 걸려 있다.
 건물 북쪽 중앙에 층계가 붙어있는데, 점점 기우는 건물을 지탱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건물 앞 동서에 연못을 만들고 반월형 교각을 가진 두 개의 오작교를 놓아 양 연못을 다리 밑으로 연결했다고 한다.
 
호남 제1의 정자, 피향정

 전북에는 전주의 한벽당, 남원의 광한루, 순창의 귀래정 등 유독 이름난 정자가 많다. 정읍 역시 호남 제1의 정자로 평가받는 피향정(보물 제289호)이 있다.
 태인에 피향정이 생기게 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신라시대 최치원선생이 태산태수(현 태인, 칠보면 일대)로 재임할 때 이곳의 연꽃 방죽을 소요하며 풍월을 읊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정자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확인하기 어렵다. 7개 돌계단의 앞면 현판에는 피향정이라 쓰여져 있고, 하연지쪽 뒷면엔 호남제일정이란 편액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원래는 기둥이 30개가 되어야 하는데, 중앙의 2개를 세우지 않고 28개를 세운 것은 우주의 28숙(별자리)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호남제일문
 
 호남제일문이란 이름은 전주가 전라남북도, 제주도를 통합하는 전라감영의 문, 호남평야의 첫 관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호남제일문의 현판은 단아하면서도 한편 웅장한 듯하면서도 자칫 권위롭기 쉬우나 오히려 따뜻한 필치가 우아함을 드러내는 고 강암 송성용선생의 글씨다.
 호남제일문은 언제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을까. 호남제일문은 북이 허하여 부가 드물다하여 지세상 허술한 북쪽을 누르기 위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호남제일문은 지난 1977년 5월 기존 4차선 진입로에 건립됐다. 이어 19991년 전국체전 진입로 확장으로 헐렸으며, 1994년 8월 13일 현재의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