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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湖南)과 황등제(黃登堤)

와이투케이 2011. 10. 2. 10:08

중국에서 호남(湖南)이라고 할 때 그 기준이 되는 호수는 동정호(洞庭湖)다

중국의 호남지역은 동정호 이남지역을 가리킨다

한국의 호남은 어떤 호수를 기준으로 하는가

한국의 동정호는 어디인가?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황등제(黃登堤) 황등호이다

일제시대에 없어진 이 황등제는 미륵산 일대로부터 내려오는 물길을 막아서 형성된 인공 호수이다.

황등호 주변의 둘레가 80리나 되었던 황등제의 둑은 황등면에 있었다

익산시 원광대학교 뒤쪽의 도치산과 황등산 사이를 연결한 둑의 길이는 약 1.3㎞이다

익산 원불교총부를 지나 황등으로 가는 도로(국도23호)가 황등제의 뚝방이었다하며 이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가운데 허리다리(요교)가 있다

이 허리다를(요교)를 따서 황등호가 일명 요교호라고도 했다 한다

 

이 둑 안에 해당되는 호수지역이 현재의 익산시 황등면 삼기면과 금마면과 팔봉면 일대이다

이 호수는 예날 배를 타고 건너다녔다고 한다

이 황등제가 있는 지역 바로 인근엔 황등면의 도선(배나들이), 백길(뱃길), 섬말(섬마을 島村)등과 같은 수로와 관련있는 마을 이름이 있다

이 호수를 기점으로 아래쪽 지역을 호남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지역범위와도 부합된다

조선시대 실학자 반계 유형원은 '호남의 황등제, 벽골제, 눌제를 잘 정비한다면 노령산맥 이남은 흉년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벽골제는 김제에 있고, 눌제는 정읍시 고부면에 있었던 호수이다.

호수 둘레가 80리에 달했다고 하는 황등제는 굉장히 큰 호수이다

80리라고 하면 전북의 서북평야지대 농사를 전부 책임질 수 있는 수량에 해당한다

벼농사의 핵심은 바로 물문제의 해결이었고, 이 물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느냐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국력의 문제이기도 하였다

 

황등호(요교호)는 마한시대에 판 호수로 추정되고있으며 일제시대인 1935년부터 물을 빼기 시작하여 간척사업을 시작하기 했으며 1937년에 1200평의 바둑판모양의 필지로 분할되어 농사를 짓지 시작하였다한다

백제 무왕(武王)이 세웠던 엄청난 규모의 미륵사(彌勒寺)를 당시 수도였던 부여(扶餘)와 한참 떨어진 익산의 미륵산 밑에다가 세웠던 배경에는 이 황등제의 존재도 작용하였던 게 아닌가 싶다

수리안전답에 해당하는 노령산맥 이남의 곡창지대를 부여보다 가까운 거리인 미륵사와 바로 옆의 왕궁(王宮)에서 직접 관할하고자 하는 의도가 바로 그것이다.

또 한 가지는 미륵사 앞에 있는 황등제를 통하면 부여에서 배를 타고 금강으로 내려와 웅포(熊浦)나 성당포(聖堂浦)를 통하여 황등제로 들어올 수 있고, 배로 황등제를 건너오면 바로 코앞에 미륵사가 연결된다. 무왕은 배를 타고 미륵사까지 곧바로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황등제는 식량과 물류를 확보해 주는 호수였던 셈이다

무왕과 선화공주의 미륵사지 창건설화는 황등제와 무관하지 않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물이 문제이다

(옮겨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