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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역사속으로☞ 부여기행

와이투케이 2010. 12. 14. 13:12

국민학교6학년 코흘리게시절 수학여행이 백제역사의 중심지 부여 이었다

그후 무려 46년만에 부여여행을 했다

 

아스레한 기억을 더듬으며 부여를 향했다

고속도로망이 잘 뻗어있어 이곳 울집에서 요땡하여 부여까지 50여분 걸렸다

국도를 타고 가도 한시간여면 도착할수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이다

이리 가까운 거리를 46년 이나 걸려서 왔던가

어릴적 수학여행했던 기억은 군창지에서 까맣게 타다말은 거무티티한 쌀톨을 보석 찾듯이 땅속을 파헤쳐 찾았던 기억뿐이다

이번에 알았지만 그 타다 남은 쌀은 조선시대의 쌀 이란다

 

고란사 절이 그리 산아래 절벽아래 있었던가 하는 의문도 있고 도무지 옛기억은 하나도 없다

요즘 티브이 연속극에서 백제의 13대왕인 근초고왕을 다루고 있다

물론 예전에도 백제의 왕들을 다룬 연속극이 많이 있었다

백제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공부도 해볼겸 해서 백제의 옛수도인 부여를 여행해 보기로 작정을 하고 집을 나섰다

부여의 낙화암은 백제 마지막왕인 의자왕(31대왕)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일것이며

익산은 의자왕의 아버지인 무왕(서동 30대왕)의 출생지로서 백제말기에 익산에 천도를 했다는 자료들이 이곳저곳에서 출토되고 있다

백제 역대 왕들

온조왕 · 다루왕 · 기루왕 · 개루왕 · 초고왕 · 구수왕 · 사반왕 · 고이왕 · 책계왕 · 분서왕 · 비류왕 · 계왕 · 근초고왕 · 근구수왕 · 침류왕 · 진사왕 · 아신왕 · 전지왕 · 구이신왕 · 비유왕 · 개로왕 · 문주왕 · 삼근왕 · 동성왕 · 무령왕 · 성왕 · 위덕왕 · 혜왕 · 법왕 · 무왕 · 의자왕 

 

부소산성

 

부소산성(扶蘇山城)은 백제의 마지막 왕성으로 백제 시대에는 사비성(泗沘城)으로 불렸다.

부여군 부여읍의 서쪽에 금강을 낀 부소산(106m)에 자리하고 있으며, 둘레는 대략 2.2km, 면적은 약 74만㎡에 달한다.

부소산성은 부소산 정상에 테뫼식산성을 쌓은 후, 주변을 포곡식으로 쌓은 복합 산성이다.

부소산성 주변에는 다시 청산성과 청마산성등의 보조 성이 있으며, 남쪽에는 성흥산성의 지원을 받았다.

과거의 군수품 창고(군창지) 터 등이 남아 있으며 그 외에도 낙화암과 고란사 등이 있다.

 

 

 

낙화암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략하자 백제의 3,000 궁녀가 백마강으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백제 멸망 이후 타사암을 미화하여 낙화암이라 부른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고기에는 부여성 북쪽에 큰 바위가 있어 아래로 강물을 임하였는데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31대왕)과 모든 후궁이 함께 화를 면치 못할 줄 알고 차라리 자살할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 하고 서로 이끌고 와서 강에 투신하여 죽었다 하여 타사암(墮死巖)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의자왕은 웅진성에서 항복한 후, 당에 압송된 후 병으로 죽었다.

3,000 궁녀도 부여성이 함락된 후 당의 군사들을 피해 도망치던 아녀자들이었다는 설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위면에 '落花岩'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바위 위에는 백화정(百花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고란사

고란사 (皐蘭寺)는 충남 부여읍 부소산 절벽아래에 위치한 절로 충남 문화재자료 제98호로 지정되었다

백제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백제17대왕인 아신왕때 고란사가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백제가 멸망할때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3000년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028년(고려헌종19년)에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다 

절 뒤 바위 틈에 고란정이 있으며,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가 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 절은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 하며, 또 궁중의 내불전이었다고도 전한다.

 

 

 

 

 

 

 

 

사자루

사자루는 부여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누각으로, 이곳은 달구경을 했다는 송월대가 있던 자리이다.

조선 순조 24년(1824)에 군수 심노승이 세운 것으로, 조선시대 임천의 관아 정문이었던 배산루를 1919년에 이곳으로 옮겨 짓고는 사비루라 이름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사방이 개방되어 있으며, 오른편 북쪽 칸에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들었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건물 앞면에는 조선 후기 의친왕 이강이 쓴 ‘사비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백마강 쪽으로는 ‘백마장강’이라는 현판이 함께 걸려 있다.

사비루는 사방이 트여있는 높은 곳에 있어 부여의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누각이다.

건물을 옮겨 세우기 위해 땅을 고를 때 ‘정지원’이라는 이름을 새긴 백제시대 금동 석가여래 입상이 발견되어 더욱 주목받는 장소이다 

 

 

 

 

 

사자루 앞에 있는 포토포인트

 

군창지

군창지는 백제 때 군대에서 쓸 식량을 비축해 두었던 창고터로 부소산 동쪽에 있는 부소산성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군창지는 1915년 땅 속에서 불에 탄 곡식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1981년과 1982년 두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로 건물터의 규모를 자세히 밝혀냈다.

백제 때부터 자리잡은 이곳 군창지를 조선시대에도 다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가운데에 공간을 두고 동·서·남·북으로 건물을 배치하여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