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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호텔 셰프가 전북장수의 육십령으로 간 까닭은

와이투케이 2013. 12. 20. 10:40

 

 

                                          전북 장수군 장계면에 위치한 육십령휴게소를 운영하는 조철 셰프(왼쪽)와 아내 김성숙씨

 

 

 전도유망한 요리사에서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다
육십령휴게소 식당 주인 된 조철 셰프의 특별한 메뉴도톰한 덩이를 위아래로 가르자 잘 익은 돼지고기가 하얀 살을 드러낸다. 고소하다

밑에 눌려 있던 밥을 올려 혀와 함께 칭칭 감자 구수하다

위에 올라간 사과조림과 어린잎까지 입안에서 뒤엉키자 아삭하고 새콤하기까지 하다

뒤이어 ‘크림소스 까르보나라’가 나온다

우리로 치자면 된장찌개나 다름없는, 가장 대중적인 이탈리아 파스타다

하얀 접시에 우윳빛 국물이 흥건하다

이탈리아에서는 거의 빡빡한 비빔면 수준인데 국물문화권인 한국에서는 좀 다른 모양새다

맛집의 격전장에 내놓아도 꿀릴 것이 없어 보인다

 

 

전북 장수군 장계면에 위치한 육십령휴게소에는 돈가스와 2가지 파스타가 있다

이 메뉴들이 700m가 넘는 고갯마루에 나타난 때는 올해 4월이다

조철(53), 김성숙(51)씨 부부가 군청의 공개입찰에서 이 아담한 휴게소를 낙찰받아 운영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원래 산야초 뜯어 한식을 하려 했는데, 주변 분들이 서양음식을 전공했으니 그런 메뉴를 해봐라 했어요.”

조씨는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의 전신인 경희호텔경영전문대학에서 프랑스 음식 등을 전공했다

졸업하기 전에 용산 미8군 내 ‘멤버스 클럽’에서 일할 만큼 실력이 출중했다.

“실제는 미군보다 행세하는 한국인들이 더 많았죠.”

차에 미8군 출입증을 달고 거드름 피우는 이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한겨울이면 스산한 휴게소
돈가스·파스타 먹으러
한두시간 달려오는 단골 많아
건강한 먹거리 운동도 열심

 

 

 

졸업 후에는 3년간 ‘쉐라톤 워커힐 호텔’(현재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일하고 87년께 ‘스위스 그랜드 호텔’(현재 ‘그랜드힐튼 서울호텔’)로 옮겼다

주로 대사관 주최 파티나 대형 행사를 뚝딱뚝딱 해치워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가 화려한 호텔 주방에서 덕유산 자락의 휴게소 부엌으로 인생을 옮긴 사연이 궁금하다

 “20대였죠. 연회장 파트를 맡아 아주 열심히 일했어요.”

서울에서 열린 국제요리대회에서 금상도 탔다

1991년 인생의 분기점이 찾아왔다

1988년 호텔 설립과 동시에 생긴 스위스 그랜드 호텔 노조를 “민주적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과 후배들의 간곡한 청 때문에 덜컥 노조위원장을 맡았다

두차례 위원장을 하고 주방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1997년 호텔노조들이 연대해 민주노총 산하 민주관광연맹을 결성했다

또 연맹위원장을 맡았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최소 10년은 해야지 생각했어요.”

그는 2000년께 호텔업계에서는 최초인 특급호텔 연대파업을 이끌어냈다

그해 6월 롯데호텔을 시작으로 스위스그랜드호텔, 서울힐튼호텔(현재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 등 서울의 특급호텔 3사가 비정규직의 정규화 등 공동 요구를 내걸고 파업에 돌입했다

대포를 쏘는 듯한 커다란 소리(섬광탄), 끌려 내려오는 조합원들의 얼굴, 뿌연 연기, 점점 더 커지는 투쟁가 등. 그 시절이 아직 선하다

 

수배령이 떨어지자 명동성당에서 6~7개월간 “갇혀 지내다가” 자진출두해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소속 호텔은 그를 해고했다

2002년의 일이다. 꼬박 10년하고 1년을 더 채우고 나서 노동운동 판을 떠났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셰프’였다. 다시 도마와 칼을 잡았다

노동운동을 하는 동안 투정조차 안 한 아내에게 진 마음의 빚도 갚고 싶었다

 7~8년간 서울 강남 일대와 명동, 압구정동 등의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외식업 컨설팅도 했다

하지만 “(음식을) 조리하기가 싫어질 정도”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외식업체의 재료들은 대부분 수입 농산물인데다가 수익을 내기 위해 (불필요한) 기교를 부려 가격을 올렸어요

푸아그라, 캐비아 써서 소비자를 현혹했죠.

” 현실도 예전과는 달랐다

 2000년대 서양음식을 다루는 외식업계는 유학파들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르 코르동 블뢰, 시아이에이(CIA), 아이시아이에프(ICIF) 등, 외국 유명한 요리학교 출신이 아니고는 간판도 내걸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수업료가 비싼 탓에 해외파들은 대부분은 부유한 집 자식들이 많았다

 

 

2 조철 셰프가 만든 ‘장수돈까스’ 세트. 돈가스 외에 사과수프와 어린잎샐러드가 나온다. 3 육십령휴게소의 크림소스 까르보나라. 4 밤새 쌓인 눈에 덮인 육십령휴게소

 

 

그는 3년 전 전북 진안으로 내려가면서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귀농을 실천했다

본래 고향인 경남 사천으로 갈 요량이었다. 아내가 이유를 설명한다

“남해대교 생기고 땅값이 엄청 올랐더라고요

 감히 엄두도 못 냈어요

산골짜기는 싼 편이잖아요.”(웃음) 옹기를 굽는 조씨의 친구가 장계에서 터를 잡은 것도 한 이유였다

그러다가 올봄 인근의 육십령휴게소를 낙찰받으며 이사했다

아내는 진안을 떠나올 때 매우 아쉬웠다

“전공자라는 게 알려져 그 지역 식품회사 컨설팅이나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아지고 자리를 잡아가던 터였거든요.”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의 경계에 있는 육십령은 한겨울 스산하기 짝이 없다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들이치고 푹푹 신발을 잡아먹는 눈이 수북하게 쌓이는 곳이다

여기 자리잡은 작고 낡은 국도 휴게소를 누가 찾아올까 싶지만 그의 돈가스와 파스타는 인근에 소문이 나 1~2시간 차를 몰고 일부러 찾아오는 단골도 생겼다

지난여름에는 하루 200여명의 손님을 치러낼 정도로 바빴다

“너무 힘들어서 도망치듯이 문을 닫은 적도 있었어요.” 아내 김씨의 말이다

 

휴게소 벽에는 ‘저희는 슬로푸드를 지향합니다’, ‘로컬푸드를 사용해 맛있게 요리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도저히 구하기 힘든 베이컨 같은 재료만 빼고 모두 지역 친환경농산물이다

‘장수돈까스’(9000원)에 따라 나오는 수프는 장수 사과가 재료다

샐러드에는 껍질을 안 벗기고 간 들깨소스가 뿌려진다

쌓인 눈 때문에 고기 공급이 힘든 경우를 빼고는 생고기를 쓴다

직접 손질한 수제돈가스다

흑마늘, 사과잼, 양파 등 갖은 재료가 소스 재료다

가격을 낮춘 돈가스(7000원)도 있다

까르보나라의 소스에는 타임, 계핏가루 등이 들어간다. 토마토스파게티도 있다. 아내가 담근 피클과 김치가 반찬이다. 처음엔 단무지를 찾는 이가 많았지만 지금은 피클만 사고 싶다는 손님도 있다.

 

그는 지역에서 건강한 먹거리 운동을 펼치고 있다

활동가 10여명과 함께 진안장수슬로푸드지부를 운영한다

“1차 농산물의 생산기지인 농촌이 좋은 먹거리에 관한 개념을 잡아야 합니다

좋은 음식은 좋은 재료에서 출발합니다.” 진안의 소농 150여가구가 출자한 ‘진안마을주식회사’의 일도 맡아 직거래 등의 활동도 하고 먹거리의 소중함을 다룬 어린이요리교실도 열고 있다

‘지속가능한 농촌’이 그의 목표다

신개념 귀농 프로젝트인 ‘부귀영화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부귀’는 진안군의 한 지역명이고 ‘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영화’를 따온 것이다

“영화적 요소가 가미된 농가 맛집을 작은 규모로 해보자는 생각입니다

 

 

 

옛날에는 화적 떼가 들끓어 장정 60명이 모여야 고개를 넘었다는 설이 있는 육십령

해가 떨어지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가 천둥 같고, 깜깜하기는 깊은 심해와 다를 게 없다

후드득 열매 떨어지는 소리가 산짐승의 습격처럼 들린다

김씨는 “처음 둘이 (휴게소에서) 자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춥기도 너무 추워서 꼭 붙어 잤어요”라고 한다

조씨는 “사이가 원래 좋았는데 더 좋아졌지요”라고 웃으며 추임새를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