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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청학동으로 간 변산 월명암 신선대사람들

와이투케이 2009. 4. 21. 23:53

 그 유명한 지리산의 청학동이

원래는 전북 부안의 변산 신선대(神仙臺)에 살다가 1970년대 중반 청학동으로 이주하였다

 

지리산 청학동으로 간 변산 신선대 사람들

6.25전쟁후 변산의 월명암 신선대에는 일심교 신도들이 모여들러 18가구 80여명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었다

일심교는 "유불선 동서학 합일 갱정유도" 를 내세우며 세계의 모든 종교가 유교로 뭉처줄것을 믿는 강대성이 세운 신흥종교이다

 

이들은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생활습관을 그대로 좇아 사서삼경을 읽고 상투 댕기머리에 흰옷을 고집하며 신학문 현대문명과는 담을 샇고 살다가 1970년대 중반무렵 변산 신선대에서 지리산으로 이주해갔다

지금의 그 유명한 청학동이 바로 그곳이다

1996년경 끼지만해도 추석때 변산의 신선대로 성묘오는 그들(은재필씨 가족)을 볼수 있었는데 지금은 묘를 모두 이장해 가 내왕이 끊겼다

 

월명암(月明庵) 뒷등 낙조대에서 서해의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분초대  망포대를 지나 북재를 넘으면 신선대(神仙臺486m) 루대(樓臺)에 서게된다

신선들이 살아서 신선대라 하였는지.......어쨋든 1970년대 까지만해도 두건에 두포차림으로 세상과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자기들의 생활방식에 의하여 구름을 벗하고 유수를 지근한채 공자 맹자의 도심(道心)이 인간도리의 최선의 길임을  주장하며 신선처럼 살다가 무지한 속인들의 이념분쟁으로 북에서 보낸 김신조 일당의 청화대습격과 민간학살사건(이용복)이 비화되어 오지인들의 보호정책이라는 미명아래 이곳 사람들도 영문을 모른채 자기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정든 삶의 터전(신선대)를 빼앗기고 경상도 지리산 청학동 또는 타지로 삶의 터전을 옮겨갔다

 

전북 부안 계화도의 이대인 노인도 일심교 신도로서 변산 신선대 사람들(일심교도)이 지리산 청학동으로 가기전까지는 신선대에서 살았고 그후 지리산 등지에서 산생활을 하시다가 갯땅에서 살고싶어 10여년전에 부안 계화도로 왔다고 하신다

변산 소송 김길중님은 1977년도경에 보안면 유천초등학교에 근무할당시 이곳 도인들과 가끔 교류가 있었고 서로 오고 간 정이 있었으므로 이곳이 잊혀지지않는곳이란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가끔 이곳에 들려 한바퀴 옛터를 돌아보고 회상에 젖어본단다

 

김길중의 "오! 변산반도"

 

신선대(神仙臺) 옛터

동남쪽 월태화용(月態花容)

기령이 운집한 터

산수진경(山水眞景) 무릉도원(武陵桃源)

높은 터에 세워놓고

흐린 세상 취한 인간

바른 도법(道法) 깨우치려

흰 두건 도포 자락

신선(神仙)처럼 살았는데

무단한 정치 논리

백성 보호 미명 하에

굴원을 내 몰리듯

당신들도 추방을 당 했지요

초립동(草笠童) 글 읽던 도량엔

벽오동만 쓸쓸하고

홰나무 우거진 집터

옛날 자취 완연하니

그옛날 지인 생각

웬지 마음 허전하여

산새 우는 옛 터에

아쉬운 정 남겨둔체

반야월 이 기러기

울며 북재 넘어 가듯

흐르는 계곡따라...

해명 태명 내려왔소

 

신선대에서 변산(邊山) 小松 金吉重

 

위 사진들은 그 당시 신선대마을 입구와 마을 서당에서 찍은 사진으로 뿌리 깊은 나무 에서 퍼 왔다

 

◈월태화용(月態花容)☞달 모양 꽃 모양의 집터

◈무릉도원(武陵桃源)☞도연명(陶淵明)이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기술된 선경(仙境) 무릉의 어부가 

                                   발견하였다는 세상과 따로 떨어진 별천지

◈초립동(草笠童)☞풀로 만든 갓을 쓴 젊은 사내

                              (부안 계화도의 이대인 노인)

      (신선대 사람들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