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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끄기-이슬한 일주일 체험기(한번 도전해봅시다)

와이투케이 2008. 3. 3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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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끄고, 인생을 켜라!(Turn off TV, Turn on life)"

이처럼 매력적인 문구로 1995년 출범한 미국 시민단체 'TV 끄기 네트워크'가 주도하는 'TV 안보기 주간'이 다음달 말이라고 합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 평소 TV를 별로 안좋아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무척 좋아하는 저 역시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아내와도 약속을 했습니다. 함께 일주일 동안 TV 전원을 뽑자고. 흔쾌히 OK하더군요.

"나도 TV 보는 거 별로 않좋아해" 라면서 말이죠.


# 1일차 - 30년지기, 말없이 떠나다

직업상 평일에 일찍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TV끄기 실험을 하기로 한 만큼 집에서 시간을 좀 보내야 그 효과를 비교할 수 있을 거 같아 일부러 조금 일찍 집에 왔습니다.

방으로 들어온 저는 습관적으로 리모콘을 손에 집었습니다. "어~~!" 반응이 없습니다. 전원을 뽑았으니 당연한 결과죠. 그제서야 TV끄기가 생각났습니다.

갑자기 허전함이 몰려왔습니다.

30년지기 친구가 아무 말없이 떠났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친근하게 말 한 마디 건냈더니 '횡~'한 찬바람만 불었을 때의 당혹감일까요.

습관처럼 호주머니로 향하던 손에 잡힌 빈 담배 껍데기를 봤을 때의 허전함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저는 담배를 피지 않습니다)

과장 아닌가? 맞습니다. 조금 과장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첫날 저는 역설적이게도 'TV'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내 곁에서 30년 넘게 친구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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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차 - 변수의 등장, 인터넷

아내가 머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TV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는 했으나, 남편 몰래 혹은 습관적으로 틈틈히 보기 시작한 거죠. 증거를 포착하기란 생각보다 싶습니다.

넌즈시 물어보면 순진한 아내는 이내 자백합니다.

또하나의 변수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인터넷입니다.

인터넷 속에 모든 세상이 담겨 있는데, TV를 끈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TV보다 더 많은 것들이 인터넷엔 무한하고, TV에 꽃혔던 시선들은 인터넷으로 옮겨간 지도 이미 오래라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

아내는 '사이질'을 하고, 저는 일을 핑계로 '파도타기'를 합니다.

조만간 '인터넷 끄기운동본부'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TV보다 인터넷이 더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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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차 - 익숙해지다?

우리는 차츰 TV 안보기에 익숙해지고 있는 듯 했습니다. PDP 평면보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 더 말이 많아졌고, 밥 먹을 때도 TV를 보는 일이 없어지니 말이 조금 더 늘었습니다.

꺼진 TV의 검은 얼굴이 못내 어색하기도 했지만, 대신 라디오나 음악 CD를 좀 더 들었고, 평소 신문은 <오늘의 운세>를 먼저 보던 아내도 어느새 보니 꼼꼼히 뒤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저의 잠자리 시간도 조금 빨라 졌습니다. TV를 켜놓고 보다 잠들던 습관 때문에 보통 12시를 넘기던 것이 침대만 누우면 곧바로 잠들었구요, 숙면을 취한 듯 자고 나면 개운한 맛이 더 컸습니다. 그 전엔 한참 졸리다가도 씻고 나서 TV를 켜면 거기에 또 한참을 집중하기 일쑤였거든요.

그러나 공포의 주말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 7일차 - '대왕세종'의 유혹을 뿌리치다

주말은 제가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날입니다. 그만큼 TV의 유혹도 만만찮습니다.

되도록 꼭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3건이나 있기 때문인데요.

KBS '대왕세종'(토,일 밤 9시50분)과 MBC '출발 비디오 여행'(일요일 12시10분), SBS 'SBS스페셜'(일요일 밤 11시5분)입니다. (너무 많군요!)

특히 대왕세종이 문젠데요, 제가 요즘 완전 빠져 있어서 그 유혹을 뿌리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왕세종은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를 쓴 스타작가 윤선주씨의 대사발이 압권입니다. 더구나 요즘 한창 충녕대군(세종)과 양녕 간의 왕세자 다툼(정확한 표현은 아니죠)과 태조와 고려부흥세력 간 힘겨루기가 절정을 이룬 이 때에 무려 2편이나 볼 수 없다는 건 거의 절망에 가깝습니다.

과연 저는 이 유혹을 이겨냈을까요. 판단은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뜻에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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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끄기, 인생이 곧바로 켜지지는 않습니다

2005년 발족한 'TV 안 보기 시민모임'은 5월 첫 주를 'TV 안 보기 주간'으로 정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TV 시청시간 3시간 정도라고 합니다.

얼마전에 한 방송사가 전남 외딴 섬 다랑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2월 4일부터 40일 동안 TV 끄기 실험을 했더니 일상이 크게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10가구 28명 중 신문을 전혀 안 보는 사람이 24명에서 15명으로 줄었고, 부부가 자주 대화를 한다는 이는 4명에서 9명으로 늘었습니다. 70대 노인과 네 살 꼬마가 나란히 앉아 동화책을 읽고, 중년 부부가 밤에 서로 얼굴 팩을 해주게 됐다는 말도 전해졌습니다.

TV 없는 일주일은 가끔은 따분했고, 때로 손은 리모콘을 만지작거렸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저는 서로 말이 조금 많아졌고, 서로 눈을 보는 일이 많아졌으며, 어디서 오는지 모를 약간의 여유도 생겨씁니다.

TV끄기 마지막날인 일요일(30일)엔 간만에 인터파크에서 1만5000원짜리 책도 두 권씩 주문했습니다. TV끄기 일주일의 막판 선물일까요, 아님 다음달 청구될 카드값을 보며 지을 한숨 선물일까요?

어쨌든 '소박한' 일주일 TV끄기로 생각보다 많은 걸 얻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어떠세요, 한 번 도전해보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