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완주상관여행) 정여립 공원☞ 조선시대 선각자 정여립 선생의 얼과 혼이 숨쉬는 곳(221210)

와이투케이 2022. 12. 30. 19:45

 

손자들과 완주 상관 맛집투어를 하면서 정여립공원을 돌아보았다

상관 신리의 완주에서 제일 규모가 큰 대형 신상카페 밀의 온도에서 커피한잔 마신 후 집으로 돌아가기 전 아쉬움에 들려본 공원으로 그간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공원이었다

 

정여립 공원은 소공원으로 조금은 초라한듯 보인다

그의 생가터에 정여립공원은 상당히 큰 주차장과 정자, 우물, 작은 연못을 갖춘 소공원으로 조성되어있다

공원이 조성됨으로 정여립 선생에 대한 역사의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사상가이며 혁명가인 정여립(1546~1589)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공원에 가면 그의 이력이 자세하게 표기되어있다

완주 상관면 출신으로 24세 젊은 나이인 24세에 문과에 급제를 하고 예조좌랑과 홍문관 수찬에도 올랐던 촉망받던 선비이었다

 

정여립 선생은 재주와 학식이 뛰어났으며 누구나 평등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어온 당찬 청년으로 그 당시의 불합리한 시대상황에 맞선 선각자이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정여립 사상이 동학혁명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서인이 된 이이를 배반했다고 하여 선조의 미움을 받고 고향으로 쫒겨난 장여립은 대동계를 조직하고 모역을 꾀했으나 서인의 탄핵을 받고 진안 죽도로 도망갔다

진안 죽도에 서당을 짓고 학문과 무예를 가르치기 위해 이곳을 오가며 하나된 세상을 꿈꾸어 왔으나 결국 관군의 포위속에  자결했다

결국 모반사건에 연루가 되어 역모로 몰려 반역자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진안 천반산 아래에 있는 죽도는 안동 하회마을과 예천 회룡포처럼 강물이 휘 돌아가는 명소이다 자신의 호까지 죽도로 할 정도로 죽도를 사랑한 정여립 선생이었다

진안 죽도가 너무 아름다워 국가 명승으로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 중이다

죽도 외에 전주에는 정여립로라는 도로 이름도 있다

 

기축사화로 동래 정씨 일가들은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으며 정여립은 족보에서도 삭제되었으며 그가 살던 집은 파해쳐지고 연못이 되었다

 

당시 특히 호남 선비들의 씨가 말랐다고 할 정도로 천명이 넘는 수많은 선비와 양민의 목숨을 앗아간 기축사화의 희생자인 정여립에 대해서는 독립운동가 단재 신재호 선생은 동양의 위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직은 공원이 잘 알려지지 않아 찾는 이는 없어 쓸쓸한 공원이었다

 

2020년 조성한 정여립공원은 철로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소는 완주군 상관면 신리 392번지이다

 

 

 



★완주 상관 맛집 가족레스토랑 불칸 화덕구이 이야기 바로가기 ☞https://y2k2041.tistory.com/15814790

 

(완주맛집) 완주 상관맛집 불칸 화덕구이☞손주들과 함께 상관 맛집을 찾아서(221210)

둘쨋 딸 가족과 함께 완주 상관 맛집 투어를 다녀왔다 딸과 사위는 물론이고 두 손자가 함께하여 가족 회식의 즐거움이 더한다 손자들이 초등학생들이라서 만날때 마다 손자들의 재롱도 대단하

y2k2041.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