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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행사)익산 출생 김민기 49재 추모 공연☞문화 예술인들이 기억하는 자랑스러운 익산인

와이투케이 2024. 9. 12. 16:38

 

익산출생 김민기 49재 추모 공연

문화 예술인들이 기억하는 자랑스러운 익산인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전북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익산 중앙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녔는데요. 의사였던 아버지가 전쟁 중에 피살되어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으며 그 후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상경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했으나 붓을 내려놓고 운명적으로 가수의 길로 들어섰으며 마지막까지도 본인을 뒷것으로 자청했던 진정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가이자 진정한 예술인이었습니다.

 

 

아침이슬이 맺히기 전 어느 무더운 날에 이 좋은 세상을 뒤로하고 별이 되었으며 우리는 아침이슬이 맺히는 계절에 아침이슬을 함께 부르며 그를 그리워하고 마음을 모아 추모했습니다.

 

 

우리나라 소극장의 상징인 학전을 30여 년간 운영하며 수많은 후배 예술인을 배출해온 그는 우리나라 예술인의 큰 별이고 큰 둥이었는데요. 아침이슬이 담긴 첫 앨범을 통해 공식 데뷔했던 김민기 님이 49재를 맞아 그의 고향 익산에서 추모 공연이 열려 동시대를 살아온 익산인이라는 인연으로 추모 공연에 참여하고 관람했고요. 그리고 깊이 존경을 표하고 명복을 빌었습니다.

 

 

그의 대표곡인 아침이슬은 민주화 운동과 촛불집회에서 애국가처럼 으레 불리었으며 청년 정신과 저항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는 대중음악의 품격을 높인 스승이었고 어느 예술인에게는 영웅이었으며 나아가 가수이며 작곡가, 작사가이고 공연제작가, 연출가, 극단대표, 노동운동가, 시인 등으로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종합예술인입니다.

 

 

49재 추모 공연

 

고 김민기 선생의 추모 공연과 추모 행사는 미국 뉴욕을 시작으로 상주, 일산,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선생의 고향인 익산에서도 추모 공연이 열렸는데요. 지난 98() 오후 7:00 고인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고향마을인 익산의 소공원인 영등 공원 작은 무대에서 김민기 49재 추모 공연이 진행됐습니다.

 

 

김민기 선생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다 함께 마음과 뜻을 모아 마련한 순수한 민간 중심, 시민 중심의 추모 공연무대였습니다. 지난 818일 배산체육공원 야외음악당에서의 추모 공연에 이어 두 번째 추모 공연으로 그를 사랑하고 추모하는 시민들 300여 명이 참가하여 추모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이번 공연도 김민기를 추모하는 익산시민들과 김민기를 추모하는 익산시민 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익산 예총과 익산 민예총, 익산 생활문화 동호회, 국악단 소리뫼, 익산 통기타연합, 익산 직장인밴드연합회, 룩스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익산시민 O2 합창단, 전북 통기타연합 등의 문화예술단체들이 주관하였습니다.

 

 

여기에 사회 공공성·공교육강화 익산연대, 익산희망연대, 전북 자율방범연합회, 익산시 장애인 축구협회, 익산시 장애인태권도협회 아우름 봉사단, 한살림 전북 생협 등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도 주관단체로 참여하여 추모식을 빛내주었으며 사회는 전북 특별자치도 대표 MC인 오선진 아나운서가 맡아 진행했습니다.

 

 

추모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전 주최 측에서 미리 준비한 국화꽃 헌화가 진행되었습니다. 모든 참가자가 도착하는 순서대로 무대 앞 헌화 단상에서 헌화하며 고인의 명복과 평안을 기원했습니다.

 

무대와 헌화 단상 그리고 객석까지 추모 촛불 조명등에 불이 점등되고 김민기 관련 영상이 상영되면서 1부 여는 장, 2부 공연무대로 49재 추모 공연이 진행됐습니다.

 

 

1부 추모 공연 여는 장

 

내빈소개에 이어 1부 여는 장으론 진혼무와 진혼곡, 시 낭송, 추모사, 경과보고가 진행되었고요. 이어 2부 공연으로는 지역 예술인들의 통기타 공연, 아침이슬 다 함께 부르기, 대담, O2 합창단 공연, 상록수 다 함께 부르기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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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무대는 김유란, 이솔아 단원이 무대에 올라 당신이 가신 그 길이란 뮤지컬 진혼무가 엄숙한 분위기 속에 펼쳐지며 가신 님의 넋을 달랬는데요.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로 시작하는 김민기 작사 작곡의 아름다운 사람을 진혼곡으로 배경 삼아 아름다운 몸짓으로 진혼 춤사위를 펼쳤습니다.

 

 

계속하여 서울대학교 국악과 학생인 김유라 님의 판소리 단가 추억과 이선희의 인연이 소리뫼 예술단 김민수 단장의 고수로 진혼곡을 들려주었는데요, 특히 단가인 추억은 국창 임방울 선생이 자신의 연인이 하늘로 떠났을 때 무덤에서 즉흥적으로 가사와 음을 붙여 만든 노래로서 익산의 자랑스러운 국악 가족인 부녀가 뜻깊은 무대에서 함께 판소리 가락으로 가신님을 그리워하고 추모하여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어 정덕주 교수의 시 낭송이 이어졌는데요. 김민기 선생의 생전 일상과 인생이 생생하게 담긴 자작시 김민기 님을 그리워하며 싯귀를 숙연한 분위기 속에 낭송하여 우리들의 슬픔을 대신하여 주었고요. 익산의 삼산의원을 알고 있는가요? 성락교회에서의 일요예배와 익산 중앙국민학교 운동장이 그립지 않은가요? 그의 소년 시절 익산의 추억을 되물어보는 싯귀는 김민기 선생의 일대기를 직접 본 듯한 추모의 시 낭송이었습니다.

 

 

다음으론 김민기 선생을 추모하는 익산의 16개 단체 위원장 중에서 유금봉, 손인범 나갑주 위원장 등 3인이 대표로 무대에 올라 추모사가 이어졌는데요. 나갑주 위원장은 선생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자리를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모두가 일어선 가운데 머리 숙여 묵념을 인도했고요. 손인범 위원장은 대표 추모사에서 김민기 선생은 이미 천국에 가 계시고 극락에 가 계실 것이라고 말하며 익산이 낳은 선생은 익산의 자랑스러운 큰 별이 되어 우리는 계속 기억할 것이며 앞으로도 뒷것을 계속 추모사업으로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하는 추모사를 낭독했습니다.

 

 

이어 김민기를 추모하는 시민단체들의 심부름꾼이라고 본인 소개를 한 이상봉 사무처장께서 김민기 추모사업의 그동안의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하는 경과보고를 진행했는데요. 고향이 같은 익산인으로서 익산시민으로서 나아가 같은 음악인으로서 모두가 모여앉아 뜻을 같이하고 중론을 모아 김민기를 추모하는 위원회를 만들게 되었고요.

 

 

익산의 20여 개 단체와 80여 명의 개인이 자발적으로 후원에 참여하여 십시일반 후원금이 모여졌고요. 유족들과도 직접 통화도 하며 이렇게 뜻깊은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경과보고를 했습니다. 또한, 이번의 추모 공연에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익산역 맞이방에서 추모 버스킹을 계속 이어갈 것이며, 향후 김민기 추모 기념비 건립과 김민기 거리 조성, 추모기념관 건립에도 우리 위원회가 마중물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2부 추모 공연

 

 

2부 공연에서는 익산지역에서 내로라하는 쟁쟁한 실력을 갖춘 지역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주로 김민기 님의 자작곡 노래들을 통기타와 그룹사운드들이 선보이며 추모했는데요. 특히 추모 공연에 딱 어울리는 익산의 통기타 예술인 동호회원들이 공연에 많이 참여했습니다.

 

 

2부 순서 첫 번째 무대는 달세뇨이었는데요. 고은 시인의 시에 김민기 님이 곡을 붙인 가을 편지와 송창식의 나의 기타 이야기를 계속해서 열창하여 먼저 떠난 임을 그렸습니다.

 

 

달세뇨는 익산 예총 회장의 막냇동생이고, 익산 예총 회장과 김민기 님은 중앙동에서 소년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입니다. 달세뇨가 고등학교 3학년이고 김민기 선생은 28살 되던 해인 1979년에 중앙동 큰형이 운영하던 화실에 김민기 님이 들려 달세뇨의 기타로 아침이슬을 직접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난다고 말했고요. 달세뇨는 그 당시 수줍은 소년 같았던 김민기 님의 추억의 옛이야기를 전하며 그를 추억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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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모든 참석자가 아침이슬 다 함께 부르는 시간이 이어졌는데요. 모든 참석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옆 좌석의 추모객과 손을 맞잡기도 하고 촛불 조명등을 흔들며 아침이슬을 합창했고요. 언제 어디에서 들어도 아침이슬은 김민기 님이 떠오르고요. 먼저 가신 임을 기리는 추모 공연임에도 추모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추모 공연 중간에 고인의 친구와 지인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생전 그의 추억을 되새기는 대담시간도 마련했는데요. 김민기 님의 지인인 조동화, 손인범 선생 등이 무대에 올라 옛날 인연과 추억, 사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70년대 암울한 시기에 경찰에 쫓기던 김민기 님이 익산과 김제에서 농사지으며 숨어 보냈던 이야기부터 김제 시골 마을 농가에 숨겨준 이야기, 공장의 불빛 이야기와 노동자 탄압, 민주화 운동 이야기와 민중가요 등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옛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였고요. 선생의 삶과 정신을 다시 떠올리게 했던 추억의 회고시간이었습니다

 

 

다시 공연무대가 계속 이어졌는데요. 남성 3인조 띵가띵가는 아하 누가 그렇게 와 내 나라 내 겨레를 부르며 그를 그리워했고요. 음악스케치, 울림, 소리 모아 07등 익산지역 통기타 예술인들이 무대에 연이어 오르며 김민기의 작은 연못, 정태춘 박은옥의 우리는, 안치환의 죽창가, 김민기의 주여 이제는 여기에, 김정호의 하얀 나비, 김민기의 그사이를 노래하며 관객들과 한 몸이 되어 가신님을 기리며 추모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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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론 송혜진 단장의 지휘 아래 익산 O2 합창단의 무대가 이어졌는데요. 아침이슬과 내 노래 내 겨레 등 김민기 모음곡을 화음을 맞추어 연이어 부르며 가신 님의 넋을 기리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오늘 추모 공연의 마지막 무대도 역시 다 함께 부르기였습니다. 김민기의 상록수를 무대와 객석에서 모든 참여자가 함께 부르면서 먼저 떠난 뒷것 김민기를 그리워하며 기리고 추모하는 시간이었고요. 익산출생 김민기 49재 추모 공연은 아쉬움 속에서 이렇게 막이 내렸습니다.

 

 

김민기 선생은 아침이슬, 상록수 등 수많은 노래를 남기었는데요. 대부분 그의 노래들은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쫓기고 숨어지내는 암울한 시기도 있었고요. 1987년 서울의 봄을 맞아 다시 문화예술 현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하철 1호선의 첫 공연의 연출을 맡아 1991년에 서울 대학로 학전에서 공연하기 시작하였고 지하철1호선은 2008년까지 18년 동안 4,000회를 기록했으며 그로 인해 독일에서 수여하는 문화훈장인 괴테 메달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민기 선생은 많은 후배 예술인을 배출했습니다. 고 김광석은 학전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이었고요. 윤도현, 권진원, 박학기, 정재일, 나윤선 등 후배 가수들을 배출했으며, 설경구, 황정민, 안내상, 김윤석, 장현상, 조승우 등도 후배 예술인이었으며, 백상예술대상과 대중문화 예술상 등 수많은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익산 영등 공원에서의 김민기 49재 추모 공연은 끝이 났지만, 임에 대한 추모사업은 앞으로 민간 중심으로 계속하겠다고 그를 추모하는 익산시민들은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진행되는 김민기 님의 추모사업에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합니다.

 

익산 영등 공원

 

 

김민기 49재 추모 공연이 열린 영등 공원은 익산 YMCA 뒤편에 있는 도심 속 소공원인데요. 시민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공원으로 소공원답게 규모가 작은 무대가 설치되어있어 작은 행사나 축제하기 좋은 공원입니다. 그 외에도 농구코트와 어린이놀이터가 조성돼있는 근린공원이고요. 익산 백제단길의 영등동 먹자골목 바로 옆에 있어 집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쉬었다 가기 좋은 공원입니다.